故 정주영 회장의 도전정신… 첫 국산차 ‘포니’ 생산 시작[역사 속의 This week]

  • 문화일보
  • 입력 2023-11-27 08:58
  • 업데이트 2023-11-2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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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85년 당시 정주영(맨 앞) 현대그룹 회장이 포니 엑셀 신차발표회장에서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현대차는 이듬해 포니 엑셀로 미국시장에 진출했다. 현대자동차 제공



■ 역사 속의 This week

“이제 우리 스스로 개발한 자동차를 만들어 보겠다.”

1973년 3월 현대자동차는 독자적인 자동차 생산을 결정한다. 1967년 설립된 후 포드의 자동차를 조립 생산했는데 포드와의 합작사 설립 협상이 결렬되자 고유 모델 개발에 나선 것이다. 세계 자동차업계는 허황된 꿈이라며 코웃음을 쳤고, 회사 내부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완벽하게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심지어 항공기까지 무엇이든 생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로부터 3년이 채 안 된 1975년 12월 1일 첫 국산 차 ‘포니(PONY)’의 생산이 시작됐다.

포니의 개발을 진두지휘한 사람은 훗날 ‘포니정’이라는 별명이 붙은 정세영 현대자동차 사장이었다. 그는 이탈리아로 날아가 물색 끝에 폭스바겐의 ‘골프’ 등을 디자인한 30대의 유망한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에게 디자인을 맡겼다. 엔진과 플랫폼은 일본 미쓰비시에서 들여왔다. 이탈리아와 일본에 파견된 현대차 직원들은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어깨너머로 기술을 보고 배웠다.

차명은 공모를 통해 결정됐다. 국민의 높은 관심 속에 무려 6만 장의 응모엽서가 도착했고, 아리랑, 무궁화, 새마을 등의 이름이 많았다. 여러 후보를 놓고 엽서를 정리했던 여대생들에게 투표하도록 했는데 조랑말이란 뜻의 포니가 뽑혔다. 1974년 10월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인 포니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 최초이자 세계적으로는 16번째,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 고유모델이었다.

남산을 오르는 주행시험을 마치고 1975년 12월 울산 공장에서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해 이듬해 1월 출시됐다. 가격이 당시 아파트값의 절반에 달하는 228만 원 정도로 고가였지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첫해에만 1만726대가 팔려 국내 점유율 44%를 차지했다. 중산층의 로망이었던 포니는 1982년에 누적 생산 30만 대를 돌파하며 마이카 시대를 열었고, 1976년 에콰도르에 5대를 시작으로 세계 60여 개국에 수출됐다.

우리 힘으로 만든 국산 차 1호 포니는 어려웠던 시절 온 국민의 기쁨으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갖게 해줬다. “이봐, 해봤어?” 정주영 회장의 도전정신으로 탄생한 포니는 자동차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자동차 생산국으로 만든 초석이 됐다. 현대차는 지난 5월 49년 전 토리노 모터쇼에서 포니와 함께 공개됐던 콘셉트카 포니 쿠페를 원형 그대로 복원하며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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