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민예관 소장 ‘백자청화초화문각병’[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세계 속 우리 문화재]

  • 문화일보
  • 입력 2023-11-27 11:41
  • 업데이트 2023-12-1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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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백자청화초화문각병(왼쪽) 일본민예관 제공, 백자청화초화문표형병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오순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직원

일본 도쿄(東京) 메구로구에 있는 조용한 주택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日本民芸館(일본민예관)’이라는 목제간판이 걸린 2층 가옥이 보인다. 이곳은 일본의 사상가, 미학자이며 한국미의 특성을 최초로 규명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가 민예운동의 거점으로 삼았던 장소로, 공예품 1만7000여 점이 소장·전시돼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예술품은 17∼19세기 후반의 조선 공예품을 주축으로 약 1600점이 소장돼 있으며, 도자기가 가장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 중 ‘백자청화초화문각병’(왼쪽 사진)은 야나기에게 각별한 도자기다. 이 병은 1914년 당시 조선에서 교사로 일하며 조선 고도자를 연구하던 아사카와 노리타카(1884∼1964)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이 한 점의 도자기가 야나기에게 조선의 미에 눈뜨게 하고, 민중이 사용하는 공예품의 미를 발견해 민예운동을 주창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했으니 가장 중요한 도자기라 해도 과함이 없겠다. 높이 12.8㎝, 입지름 5.9㎝인 아담한 크기의 이 병은 구연부 안쪽을 세심하게 갈아내 보수한 흔적이 있어 원래 모습은 ‘백자청화초화문표형병’(오른쪽)과 같이 주병 형태를 위에 얹어 멋을 더한 표형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18세기 조선에서 제작된 백자로는 드문 형태인데 이에 더해, 당시 최고가 안료였던 코발트를 사용한 점이나 유백유의 상태로 보아 당대에도 평범한 기물은 아니었을 것으로 본다. 팔각으로 반듯하게 모를 낸 몸통이지만, 무심히 흘러내린 유약과 거친 핀홀(pinhole)이 있어 여유와 풍아함을 더했다. 앞뒤로 시문 된 한 포기의 풀과 천진한 네 송이의 들꽃은 설산(雪山) 위를 꿋꿋하게 지키던 우리 선조를 보는 듯 따뜻하고 우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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