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넌 떠난 지 43년… 뉴욕 스트로베리 필즈에 추모 발길[역사 속의 This week]

  • 문화일보
  • 입력 2023-12-04 08:54
  • 업데이트 2023-12-04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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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3월, 존 레넌과 오노 요코가 신혼여행지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힐튼호텔 방에서 ‘평화를 위한 침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위키피디아



■ 역사 속의 This week

지난달 비틀스의 신곡 ‘나우 앤드 덴(Now And Then)’이 공개돼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비틀스 해체 1년 전인 1969년 마지막으로 1위를 한 지 54년 만이었다. ‘나우 앤드 덴’은 1977년 존 레넌이 만든 미완성 데모곡으로 인공지능(AI) 기술로 레넌의 목소리를 피아노 음에서 분리하는 데 성공했고, 멤버들의 연주와 코러스를 더해 완성됐다. 30대의 레넌과 80대의 폴 매카트니가 함께 부른 노래에 팬들은 “레넌이 정말 살아있는 것 같다”는 반응이다. 비틀스의 리더였던 레넌은 1980년 12월 8일 열성 팬이 쏜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그의 나이 40세였다.

비틀스 해체 후 레넌은 영국을 떠나 미국 뉴욕에 정착했다.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小野洋子)와 함께였다. 1966년 일곱 살 연상의 오노와 만나 사랑에 빠진 그는 첫 부인과 헤어졌다.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받았을 레넌의 아들 줄리언을 위로하기 위해 매카트니가 만든 노래가 ‘헤이 주드(Hey Jude)’다.

1969년 오노와 결혼한 레넌은 본격적으로 반전(反戰)·인권운동에 뛰어들었다. 두 사람은 신혼여행지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호텔 방 침대에서 7일간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펼쳐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레넌은 음악적으로도 ‘기브 피스 어 챈스(Give peace a chance)’ ‘이매진(Imagine)’ 등을 발표하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오노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자 육아에 전념하겠다며 5년 동안 음악 활동을 중단했다. 1980년 컴백을 준비하던 그는 운명의 그 날, 녹음하러 스튜디오로 가기 위해 맨해튼의 아파트를 나섰다. 팬이라며 다가온 25세의 청년 마크 채프먼에게 사인을 해주고 떠났다가 밤 10시 50분쯤 돌아왔다. 채프먼은 집으로 들어가는 레넌을 향해 5발의 총을 쐈고, 4발의 총탄을 맞은 레넌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을 거뒀다.

사건 현장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있다가 체포된 채프먼은 “레넌을 살해하면 유명해질 것으로 생각했다”는 등 살해 동기를 두고 여러 이야기를 하며 정신 질환 증세를 보였다. 재판부는 정신 이상은 아니라고 판단해 종신형을 선고했고, 그는 지금까지 복역 중이다.

레넌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43년이 되지만, 팬들은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해마다 뉴욕 센트럴파크에 있는 추모 공간인 스트로베리 필즈에는 그를 추모하기 위한 팬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이매진’이 울려 퍼진다.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걸 상상해봐요/나를 몽상가라 할 수도 있지만, 나 혼자만이 아닌걸요/언젠가 당신도 우리와 함께 하길 바라요/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될 거예요.”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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