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변종인 트럼피즘… ‘PC 좌파’의 위선이 불러낸 괴물[Deep Read]

  • 문화일보
  • 입력 2023-12-07 09:18
  • 업데이트 2023-12-0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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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호의 Deep Read - 트럼피즘 확산, 왜

좌파 포퓰리즘에 대한 ‘反명제’로 등장… 전략적 극단주의로 우파 권위주의 초래
한국 진보, 도덕성 독점하며 ‘내로남불’… 미완의 민주주의에 트럼피즘 싹트면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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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피즘(Trumpism)은 단지 미국의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애초 트럼프의 입장·행태·추종세력의 성향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그 의미가 근래 확대됐다. 세계 곳곳에서 힘을 떨치는 극우 포퓰리즘, 국가 권위주의, 심지어 (신)파시즘을 통칭해 트럼피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과거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후안 페론의 이름을 딴 페로니즘이 유행어였던 적이 있다. 페로니즘은 좌파 포퓰리즘 권위주의의 대명사였다. 비슷하게 유행처럼, 트럼피즘은 오늘날 우파 포퓰리즘 권위주의의 대명사가 됐다. 전 세계를 풍미하는 트럼피즘은 자유민주주의의 변종이다. 이는 좌파 포퓰리즘과 ‘PC 좌파’의 위선에 대한 반(反)명제로 등장했다. 이는 진보·좌파의 ‘내로남불’이 일상화한 한국에도 경종을 울린다.

◇자유 제한적 민주주의

이름이 시사하듯 트럼피즘은 한 명의 강한 지도자가 이끈다. ‘1인 체제’답게 전·현직 정부 수반을 정점으로 하고 반(反)의회적 성격을 띤다.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등이 미국의 트럼프와 비슷한 성격을 보인다고 해서 트럼피즘 지도자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의 특징은 히틀러나 무솔리니 등과는 달리 적어도 선거민주주의를 표방하며 포퓰리즘 방식으로 국가 권위주의를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즉 트럼피즘은 선거를 핵심으로 삼는 자유민주주의의 변종으로, ‘자유 제한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라 할 만하다. 선거다운 선거조차 없는 파시즘 전체주의와 트럼피즘을 동일시한다면 그 의미가 흐려진다.

포퓰리즘인 만큼 트럼피즘은 일부 대중의 극렬한 지지로 성장한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지지층을 이룬다. 미국의 경우 유색인들의 사회적 성장에 불안을 느끼는 백인, 쇠락한 농촌 지역 거주자, 사회적 열등감에 빠진 저학력·저소득층, 급변하는 사회를 따라가기 벅찬 노년층, 여성의 사회 진출에 피해의식을 느끼는 남성, 외국인과 이질적 문화의 유입을 거북해 하는 국수주의자, 문명의 세속화를 우려하는 복음주의자 등이 트럼프 지지의 원동력을 제공한다. 이들은 ‘미국제일’(America-First) 슬로건을 통해 영광스러운 옛 질서를 기리고 위안을 얻으려 한다. 트럼피즘은 ‘주변적 계층의 불안·불만이 지핀 들불’이다.

◇전략적 극단주의

트럼피즘의 전매특허는 지지자들의 불안정한 심리를 파고드는 ‘감정 자극’ 전략이다. 사람들의 심리적 위축이 자기편에의 맹목적 충성과 상대방에의 무차별 심리적 난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교묘히 이용한다. 원색적 언어, 과장된 표현, 충격적 주장, 심지어 가짜뉴스를 SNS 등 사이버 공간을 통해 마구 구사·살포하며 선동한다. 반대편이나 중도층의 거부 반응은 안중에 없다. 권력 획득과 유지를 위해 울분 가득한 우리 편의 결사적 지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지층을 극단적 방식으로 자극·흥분·동원하는 전략적 극단주의가 트럼피즘의 핵심인 셈이다.

미국은 자타 공인 민주주의의 모국이자 선진국이다. 그런 나라가 전임 대통령의 이름에서 유래한 트럼피즘의 발생지가 됐다. 사실 과거에도 1950년대 초 매카시 상원의원, 1990년대 중반 깅그리치 하원의장 등 우파 포퓰리즘의 선구자가 미국에 등장했었다. 그 계보가 트럼프로 이어져 활짝 꽃핀 것이다.

민주주의 선진국에도 자유 제한적 포퓰리즘이 횡행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포함한 모든 민주주의자를 놀라게 하고 경종을 울린다. 이탈리아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쓴 경험이 있고, 일본의 아베 신조 전 총리도 트럼피즘의 한 예로 언급된다. 우리나라도 선거 민주주의를 이뤘다고는 하지만 아직 온전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데 여러 한계를 갖는 만큼 트럼피즘이 퍼질 위험성이 상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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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에 대한 反명제

왜 트럼피즘이 퍼질까. 어쩔 수 없는 거시적 시대 조류가 근본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좌파 기득권 진영에 대한 반발 때문이기도 하다.

우선 시대 조류를 짚어보자. 첫째, 탈냉전 조류는 이념 대립의 무대를 국제에서 국내로 옮겨 왔고, 오래 잠자고 있던 진보-보수 간 사회적 갈등을 분출시켰다. 둘째, 탈물질주의 조류는 중간 타협이 비교적 쉬운 경제 사안의 비중을 낮추고 흑백논리에 빠지기 쉬운 인권·환경·복지·문화·교육 등 이슈들을 부상시켜 문화 전쟁, 도덕 전쟁을 야기했다. 셋째, 탈산업화 조류도 사회의 복잡성·다양성·불확실성·급변성을 증가시켜 사람들을 불안 심리로 몰고, 변화에 대한 적응자와 부적응자 간 격차를 넓혀 부적응자의 상대적 상실감을 키웠다.

좌우 양쪽의 중간 수렴 노력 없이, 한쪽이 극단으로 가면 다른 쪽은 이에 대한 반동으로 더 멀리 반대편 극단으로 가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트럼피즘은 ‘좌파 포퓰리즘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한 것이다. 미국에서 좌파 포퓰리즘은 경제적으로 세금 증대·복지 지출 증가·재정 적자를, 정치적으로는 연방정부의 비대화와 규제 레짐을, 사회·문화적으로는 ‘PC 도덕관’의 대세화를 낳았다. 이것들이 과도해지며 상당수 미국인이 염증과 혐오를 느껴 그 반명제인 트럼피즘에 끌리게 됐다. 특히 진보주의자가 PC 도덕관으로 상대를 악마화하는 경향이 심해지자 미국 서민들은 이들의 도덕성 독점과 위선에 반감을 품게 됐고, 이것이 트럼피즘을 확산시켰다.

◇한국에 던지는 것

이는 한국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의 좌파 정치인 중 상당수는 과거 민주화 운동권 출신으로서 우월의식을 드러낼 뿐 아니라 도덕성과 선을 독점한다. 우리 편과 생각이나 입장을 같이하지 않으면 배척하고 심지어 적폐로 매도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각종 범법·비윤리적 행동을 일삼는 위선을 보인다. 조국 사태, 송영길 돈봉투 사건, 이재명 사법 리스크, 자칭 진보 인사들의 잇단 성 비위 등이 이를 보여줬다. 이에 유행한 말이 ‘내로남불’이다.

이런 진보·좌파의 위장 도덕주의는 한국에서도 그 반작용으로 트럼피즘이 힘을 얻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미국처럼 한국의 좌우파도 서로의 반명제로 충돌하며 점점 양극단으로 치닫는 이중 포퓰리즘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힘들게 발전해 왔다. 만약 미국 등 여타 나라에서처럼 트럼피즘이 한국에서도 고개를 든다면 이는 재앙이다. 이를 막으려면 어느 한쪽의 자중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 모두 작용-반작용의 유기적 관계에 얽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경희대 정외과 교수·한국아메리카학회 회장

■ 용어설명

‘PC’, Political Correctness는 모든 모욕과 차별을 철폐하자는 신념이나 운동. 20세기 초 러시아 공산당에서 창안됐지만, 지금은 서구 진보세력의 ‘정치적 올바름’ 실천 구호로 자리 잡음.

‘자유 제한적 민주주의’는 선거 제도가 있지만 통치가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행해지지 않는 정치 체제. 세계화의 확산, 소득·경제 양극화, 탈민주주의 조류 등으로 형성된 자유민주주의의 변종.

■ 세줄요약

자유 제한적 민주주의 : 전 세계를 풍미하는 트럼피즘은 자유민주주의의 변종인 ‘자유 제한적 민주주의’. 지지자들의 불안 심리를 파고드는 감정 자극을 통해 군중을 흥분·동원하는 전략적 극단주의가 트럼피즘 핵심.

PC에 대한 反명제 : 트럼피즘은 좌파 포퓰리즘, 그리고 도덕성을 독점하는 ‘PC 좌파’의 위선에 대한 反명제로 등장. 선거 민주주의를 이뤘지만 여전히 온전한 민주주의가 정착하지 못한 한국도 트럼피즘 위험지대.

한국에 던지는 것 : 상당수 한국 진보·좌파 정치인은 민주화운동 출신으로서의 우월의식을 드러내면서 도덕성을 독점했지만 각종 범법·비윤리적 행동으로 내로남불 행태 보여. 한국에 트럼피즘이 싹트면 재앙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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