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옥연 탄생 100주년[오후여담]

  • 문화일보
  • 입력 2023-12-0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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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고문

“사람들은 내 그림의 색채가 매우 절제됐다고 한다. 팔레트에 짜놓은 원색 물감을 보면, 나는 왠지 거부감을 느낀다. 무섭기까지 할 때도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것들을 반죽해서 나의 톤을 만든다.” 한국 추상미술 1세대로, 동양과 서양,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독창적 예술을 구축한 초현실주의 선구자 권옥연(1923∼2011) 화백의 말이다. ‘벌거벗은 사람’이라는 뜻의 ‘무의자(無衣子)’를 호로 삼은 그는 “인생이란 그저 물거품, 운명에 역행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애수에 찬 그림이 특징인 그는 ‘로맨티스트 화가’였다. “화가는 정신연령이 다섯 살을 넘으면, 그림을 못 그린다”고도 했다. 상념에 잠긴 인물화도 많이 그린 그가 창출해 구사한 청회색·암회색·녹회색 등은 ‘권옥연 그레이(grey)’로 일컬어진다. 미술평론가 황인은 이렇게도 전해준다. “권옥연은 ‘고유의 체취’를 중시했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그 사람만의 목청, 그 사람만의 톤이 낼 수 있는 표현이 제대로 된 그림’이라고 했다. 그의 목청을 그림 속의 빛깔로 나타낸다면, 오래된 기왓장을 닮은 청회색일 것이다.” 이윤찬 갤러리 바이올렛 대표는 이런 찬사도 보냈다. “프랑스 출신의 화가 앙리 마티스가 ‘원색의 마술사’라면, 권옥연은 아궁이에 짚불이 타고 난 후의 ‘잿빛 연술사(演術士)’다. 그의 캔버스는 무인도의 안개와 같다. 그 무인도에는 상처 입은 예술혼의 쉼터가 있고, 내면의 희구와 갈구에 대한 동경(憧憬)의 짙은 그림자가 숨어 있다. 아름다운 여인의 외면을 덧칠하고 또 덧칠해서 상처 받을까 봐, 고운 회색의 연포(煙包)로 치장한다.”

그의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회가 서울 삼청로 현대화랑에서 지난 11월 15일 시작됐다. 오는 16일까지다. ‘파리의 노점’ ‘몽마르트르 거리 풍경’ ‘부인의 초상’ ‘절규’ ‘달맞이꽃’ ‘귀향’ ‘풍경’ ‘소녀’ ‘여인’ ‘첼로와 여인’ 등 대표작 20여 점을 선보인다. “아득한 옛날. 신라의 조상들이 매만지며 흔들던 토기 방울, 그 방울 속에서 시공을 초월한 소리가 은은히 내 귓전을 통해 가슴 가득 스며든다. 우리의 가난하면서도 풍성한 하늘, 늘 푸른 조상의 얼, 끊이지 않는 유한의 정(情), 또는 샘물”이라던 그의 말도 되새기게 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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