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동벌이(黨同伐異) 정치와 대통령 책임[오승훈의 시론]

  • 문화일보
  • 입력 2023-12-15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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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논설위원

붕당정치 폐해 재연되는 현실
적대적 대치 속 패당 폐해 심각
국정 차질과 정치 혐오만 누적

탕평 의미는 국민 부응한 쇄신
정치 퇴행엔 尹 책임 적지 않아
타협정치 복원해야 최고 혁신


고개를 치켜들고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짖는 삽살개 그림, 부릅뜬 눈이 표독스럽기 그지없다. 글이 붙어 있다. ‘밤에 사립문을 지키는 것이 네 책임이거늘 어찌하여 낮에도 이처럼 짖고 있느냐.’ 1743년 영조가 사헌부 인사를 사간원까지 나서 반대하자, 화원 김두량에게 그리게 하고 직접 글을 썼다고 한다. 아무 때나 짖는 삽살개는 탕평 인사를 따르지 않는 관원들이다. 종3품 관직 임명도 뜻대로 못하게 하는 신하들을 꾸짖으려 한 왕의 분노가 여실히 전해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영·정조의 탕평(蕩平) 정치에 밑받침이 된 글과 그림을 모은 특별전 ‘탕탕평평(蕩蕩平平)-글과 그림의 힘’에서 처음 일반에 공개한 서화다.

임진·병자의 전란을 겪은 조선 중기는 정치판도 전장(戰場)이었다. 정치 입장과 학맥에 따라 집단화한 붕당(朋黨)의 시대. 공론 정치가 활성화됐고, 정책 선택이 다양해진 장점은 있었다. 상호 견제로 부패가 줄어든 효과도 있었으나 점차 변질해 왕권을 위협했다.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원장은 “영조 초기 붕당은 당파의 이해를 대변하고 권력투쟁을 벌이는 전위조직으로 전락했다. 노론은 군신공치(君臣共治)를 체계화해 일당지배를 구축했다”고 분석했다. 붕당들은 서로가 타도 대상이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다른 편은 무조건 배격하는 당동벌이(黨同伐異)였다. 노론의 거두 송시열은 “한쪽이 옳으면 다른 쪽은 그르게 마련이다. 옳은 것은 잃지 말고 그른 것은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연이은 사화(士禍) 속에 숱한 선비가 떼죽음을 당하는 보복의 악순환이 벌어졌다. “지나친 당론을 막지 않으면 정치통합과 사회통합이 어려운 극한 상황, 탕평은 그래서 대두한 것이다.”(한영우 전 서울대 교수)

왕정의 권력 풍경이 역사 속 과거만은 아닐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민주주의 정부 1년 7개월 동안 벌어진 정치도 못지않은 당동벌이였다. 개인의 양심적 판단보다 당론이 우선인 패당(牌黨) 정치,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극단의 대립의식이 정치판을 짓누르고 있다. 여소야대의 분점 정부라지만, 국정 과제 이행을 위한 입법은 줄줄이 국회서 멈춰 섰다. 숫자로 밀어붙인 야당의 단독 처리 법안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게 세 번이다. 장관들이 탄핵 위협을 받고, 한 명은 실제 탄핵을 당했다.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고위공직자가 20명이다. 2년 전 시작된 야당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고, 정치 수사라며 반발한 한풀이와 사상 초유 검사 탄핵도 벌어졌다. 대선 불복 같은 상대 부정과 막말 속에 정치 혐오와 국민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

영·정조의 탕평은 고른 인재 등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치적으론 붕당의 폐단을 막는 ‘왕의 귀환’이면서, 국가 기틀을 새로 세우는 국정 개혁이었다. 검소한 생활을 솔선했고, 신문고를 부활해 소통을 강화했으며, 균역법·신해통공 등으로 경제를 안정시키려 했다. 탕평은 지시가 아닌, 중재의 정치였다. 지지와 반대 당파를 맞서게 하되 제3 세력을 등장시켜 조화를 이루도록 유도했다. 남인이 발의하면 노론이 비판하고 소론이 중재하는 속에 개혁의 손을 들어줬다. 다혈질이었으나 극단적 보복은 자제하고 설득했다. 299통의 비밀 편지를 보내 달래기도 하고, 욕설·협박도 마다하지 않았다. 당파가 제각각 장단점이 있고, 상호 견제가 발전의 동력이라고 믿었다. 조선의 마지막 중흥기, 정조의 통치술이다.

탕평의 현재적 의미는 국민이 바라는 국정 운영 방식의 변화다. 정치의 제1 중심축은 대통령이고, 무한 책임을 진다. 적대적 정치가 개혁을 가로막고 민생을 억누르고 있다면, 대통령 책임이다. 민생 입법이 막히고, 장관 탄핵소동이 벌어진 것도 대통령 책임이다. 대법원장 인준을 두 번씩이나 하고 ‘검사 정권’ 비아냥이 나온 것, 야당이 영부인 특검법을 물고 늘어지게 한 것 모두 대통령 책임이다. 야당 탓, 여당 조종으로 될 일이 아니다. 저마다 국운이 달린 총선이라며, 진영 전쟁의 끝판처럼 총동원령을 내린 제22대 총선이 넉 달도 안 남았다. “국민이 늘 옳다”던 대통령이 아니던가. 친윤·중진 퇴진, 험지 출마만이 혁신이 아니다. 실종된 타협과 협상의 정치를 복원하는 게 가장 큰 혁신이고, 대통령이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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