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총합 155년의 4인 걸그룹… ‘마지막인 것처럼 미쳐봐’[주철환의 음악동네]

  • 문화일보
  • 입력 2024-01-08 09:15
  • 업데이트 2024-01-0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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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골든걸스 ‘원 라스트 타임’

“올해엔 놀랄 일이 좀 적으면 좋겠다.” 이게 새해 소망이라면 수정을 권한다. 놀람을 경악(驚愕)에만 가두면 나머지 절반의 경이(驚異)는 놓친 셈이 되니까. 적당한 놀람은 삶에 긴장과 활력을 준다.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든(1732~1809)은 모두 106곡의 심포니를 남겼는데 클래식의 문외한도 ‘놀람 교향곡’은 기억한다. ‘놀람’(Surprise)은 4악장 중 제2악장(Andante)에 들어있는데 호사가들은 음악회에 와서 조는 사람들을 깨우려고 작곡가가 고의로 악보에 매설했다고 말한다. 하기야 졸면서까지 음악회에 참석하는 허세를 하이든도 깨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없다면 나타나지도 마라.’ 2003년 벽두에 이런 카피와 함께 등장한 광고모델은 1990년대를 뒤흔든 서태지였다. 공항에서 빠져나오는 그에게 군중은 달걀 세례를 퍼붓는다. 새로운 것으로 즐거움을 채워 달라는 일종의 세리머니다. 이거 하나는 분명하다. 대체로 유명인에게 욕을 하는 것은 요구를 하는 것이다. 아직 기대할 게 있다는 신호니까 그걸 서운함으로 대응하는 건 자신을 하류로 강등시키는 거랑 비슷하다.

새해 첫 주 ‘음악동네’의 커버로 두 걸그룹을 초대했다. 왼쪽은 골든걸스, 오른쪽은 뉴진스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도서 3장 1절). 총 155년(인순이 1978, 박미경 1985, 신효범·이은미 1989년 데뷔) 경력의 시니어는 KBS(‘아침마당’)에, 2022년에 데뷔한 주니어(민지, 하니, 다니엘, 해린, 혜인)는 미국 ABC방송(Dick Clark’s New Year’s Rockin’ Eve with Ryan Seacrest)에 출연했다. 엄밀히 말해 이 두 그룹은 비교 대상이 아니라 인과관계로 보는 게 좋다. 씨앗이 자라서 열매를 맺는 그림이니까.

골든걸스는 박진영의 기획작품이다. 처음 기획안을 보고 나는 신기하게도 예전에 방송된 ‘냉장고를 부탁해’(JTBC)가 떠올랐다. 냉장고 속의 재료를 잘 활용하여 기한 내에 산뜻한 요리를 만드는 셰프가 JYP인 셈이다. 살아온 삶이 다르고 걸어온 길이 다른 4명의 ‘누나들’은 색다른 퓨전 그룹으로 재탄생했다. ‘따로 또 같이’라는 시대정신이 4인 4색 총천연색으로 무장하니 놀랍고 신선하다. 프로듀서에겐 3개의 시옷(상상력 설득력 순발력) 혹은 3개의 치읓(창의력 추진력 친화력)이 필요하다. ‘난 뭐지’ 하던 박미경에게 ‘누나 그렇게 살 거야?’라며 박 PD는 재활 의지를 북돋웠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누나들도 대가의 애교에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제목(‘원 라스트 타임’)을 듣고 데뷔곡이 은퇴곡일 수도 있겠다 걱정(?)했는데 무대를 보고 기우에 불과하단 생각이 들었다(내가 지은 3행시 ‘마지막’을 선사하고 싶다. ‘마음먹기 달렸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막을 올려라’). ‘너무 늦어버렸나 아니면 날 막는 게 바로 나인가’(골든걸스 ‘원 라스트 타임’) 가사에서 날 막는 건 나(Myself)일 수도 있고 나이(Age)일 수도 있다. 나이는 낙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훈장도 아니고 계급장도 아니다.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김연자 ‘아모르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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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숫자도 숫자 나름이다. 분수에 맞는 자족감, 무리수를 범하지 않는 안정감으론 부족하다. 경우의 수(가능성)는 곳곳에 잠복 중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원곡 오승근)의 결론은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다. 자랑하기 좋은 나이는 아니어도 사랑하기엔 참 좋은 나이다. 단 누구를 사랑하느냐. 자신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고 팬들을 사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

괴테의 명언을 빌려오자.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는 식탁에 오를 때 생명의 에너지가 되듯이 가수는 무대에 올라 관객을 만날 때 존재감을 발한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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