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평생 약자를 사랑하고 보호자가 된 목자… 마지막 길엔 장기기증[그립습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4-01-24 09:07
  • 업데이트 2024-01-2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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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남편 조덕현(앞줄 오른쪽) 목사는 지난 2019년 마지막 가족 송년 모임 때 기념사진을 찍으며 미소를 남겼다.(맨 뒤의 아들은 그날 참석하지 못해 합성했다.)



■ 그립습니다 - 남편 조덕현 목사(1952∼2020)

지난 연말, 마흔세 번째 결혼기념일을 보냈다. 장성하여 흩어진 다섯 아이는 매 연말 가족 송년 모임이면 우리 부부의 품으로 돌아왔는데, 드레스 코드를 정하고 마니토 선물을 준비하는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3년 전부터는 북적이는 행복을 남편 없이 나 홀로 누리고 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고아들의 대부였던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의 전기를 읽으며 가난한 아이들의 교육자가 되기로 다짐한 나는 신학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구 수성못가에 있는 ‘애망원’이라는 고아원에서 120여 명의 아이를 돌보며 청년기를 보냈다.

이후 서울에 정착하게 된 나는 스스로를 성숙게 할 일을 고민하며 기도하다 당시 출석하던 교회에서 졸업을 앞둔 신학생을 만났다. 그와 1980년 12월 13일 결혼하며 나는 현명한 아내이자 어머니가 되어 우리 사회에 이바지하고자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우리는 부부이자 믿음의 동역자로 함께하며 슬하에 1남 4녀의 자녀를 두고 다복한 가정을 이뤘다. 장녀 조아려, 차녀 조샘, 삼녀 조온, 장남 조감사, 사녀 조루디아. 이들의 작명가는 아이들의 아빠다. 나의 남편 조덕현 목사는 강원 홍천군 서면 대곡리 심심산골에서 풍성한 정서를 형성하고 도시로 공부하러 나와 주의 종이 된 사람으로, 일평생 약자를 사랑하고 그들의 보호자가 되기를 자처했던 목자였다. 특히 가난했던 중고등학교 자취 생활로 누구보다 배고픈 서러움을 잘 알았던 남편은 주일학교 야유회가 열리는 날이면 나에게 부탁해 도시락을 넉넉히 준비한 후, 점심을 챙겨오지 못한 아이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정작 자신은 배를 주리고 오는 일이 잦았을 만큼 긍휼의 마음이 깊었다.

자녀들에게도 한없이 자상했던 남편은 첫째 딸의 결혼식을 한 달여 앞두고 청첩장을 손수 접으며 초대할 사람들의 이름을 정성스럽게 작성하느라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그날 남편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한순간 생을 달리한 남편의 곁을 지키며 더없이 허망한 마음이었지만, 경황이 없던 중에도 8년 전 함께했던 장기기증 희망등록이 떠올랐다. 2020년 2월 10일, 남편의 각막은 여의도 성모병원을 통해 두 명의 시각장애인에게 전해졌고, 그가 남긴 따뜻한 사랑은 빛으로 남아 여전히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남편이 떠난 후, 결혼기념일이 있는 연말이 다가오면 스산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지난 12월에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 초청한 송년 행사에 참석해 생애 가장 특별한 결혼기념일을 보냈다. 남편처럼 마지막 순간 생명을 나눈 이들의 유가족들과 함께하며 깊은 사랑의 여운으로 여느 때보다 가슴 뜨거운 연말을 보낸 것이다. 2024년 새해를 맞으며 나는 생명나눔의 뜻을 자녀들에게 확고히 했다. 막연한 내일을 기다리며 구체적인 오늘을 사는 인생에서 장기기증이야말로 내가 여성으로서 이루고자 했던 마지막 모성의 실천이라는 결심에서다.

부부가 된 그 순간부터 나를 진정한 나눔의 길로 이끌며, 소명을 일깨워준 그리운 나의 남편, 조덕현 목사의 온화한 모습을 떠올리며 올 한 해 생명나눔 운동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기를, 특히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복음의 빛이 충만하게 내려지기를 기도한다.

아내 김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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