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왕 로보와 명품 백 소동[오후여담]

  • 문화일보
  • 입력 2024-01-25 11:35
프린트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세동 논설위원

어니스트 시턴은 곰, 코요테, 쥐, 쇠오리 등을 관찰한 실화를 바탕으로 재미있는 단편 동물 소설을 여러 편 썼는데, 이 중 가장 인기 있는 게 미국 뉴멕시코 주 북부의 목축 지대 커럼포를 1889년부터 5년간 장악하고 수많은 소를 잡아먹어 현상금까지 붙은 회색늑대를 다룬 ‘로보, 커럼포의 왕’이다. 한국에는 제목이 ‘늑대왕 로보’로 많이 알려졌는데, 스페인어로 로보(lobo)가 늑대라는 말이어서 ‘늑대왕 늑대’로 동어반복이 돼 버린다.

커럼포의 목장주들은 소들에게 치명적인 로보 패거리를 잡기 위해 갖은 수를 쓰다가 실패한 후 뛰어난 늑대 사냥꾼이자 동물기의 작가인 시턴을 불렀다. 고기에 독약을 넣은 미끼도, 온갖 기발한 덫도 다 피해 나간 로보 일당 포획을 포기하기 직전 시턴의 눈에 우두머리인 로보의 발자국 앞에 다른 작은 늑대의 발자국이 찍혀 있는 특이한 장면이 들어왔다. 서열을 중요히 여기는 늑대 무리에서 우두머리 앞에 나선다면 바로 물려 죽었어야 했는데, 계속해서 로보의 앞에 다른 늑대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고 이내 이 발자국이 아름다운 흰색 암늑대 블랑카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늑대 무리의 서열을 무시하고 앞에 나가도 용인해 줄 정도로 애지중지하는 블랑카가 로보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파악한 시턴은 블랑카를 먼저 포획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로보는 부하 늑대들에게 직접 죽인 사냥감만 먹게 했는데, 끔찍이 아끼는 블랑카는 엄하게 대하지 못했다. 블랑카는 조심성 없이 앞서나가다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갔으며 결국 덫에 걸려들었다. 분노와 상실감에 자포자기 상태가 돼 블랑카를 찾아다니던 로보 역시 평소라면 걸리지 않았을 덫에 걸려 최후를 맞았다.

약간 동화 같고 만화 같은 시턴 동물기를 다시 꺼내 읽은 건,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명품 핸드백 사태가 연상돼서다. 거대한 덩치에 힘이 장사인 데다 머리까지 좋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늑대 무리를 이끄는, 그러면서도 아내에게 너무도 헌신적인 로보와 윤 대통령의 이미지가 겹친다. 야권 성향 인터넷 매체 ‘서울의소리’와 목사가 덫을 놓은 것도 닮았다. 늑대가 아내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야 낭만적이라고 해도 대통령이 아내를 위해 선거 패배를 감내하겠다면 결코 아름다운 이야기가 못 된다.
주요뉴스
기사댓글
AD
count
AD
AD
AD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