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 채 샀을 ‘꽝’ 된 복권들… 가족에게 행복 주고 싶었던 당신[그립습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4-02-01 09:15
  • 업데이트 2024-02-0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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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딸만 다섯인 오공주집의 막내 돌잔치 때 찍은 가족사진. 막내를 안은 아버지는 생전 늘 따스하고 인자했던 모습으로 딸들에게 큰 사랑을 남겨주셨다.



■ 그립습니다 - 아버지 나장환(1936∼2017)

에이! 오늘도 꽝이네!

지난주 어느 날 송년 모임을 가다가 복권판매점이 보이길래 무심코 복권 한 장을 샀다. 혹시 벼락에 맞을 확률이라는 ‘팔백만 분의 일’의 행운이 다가오지 않을까 하며 일주일을 복권당첨이라는 대박 꿈을 꾸며 지냈다. 비록 ‘꽝’ 하는 순간에 기대는 실망으로 갈아탔지만….

아버지는 자주 복권을 구매하셨다. 월급쟁이 직장인이셨던 아버지는 복권을 사면서 무슨 꿈을 꾸셨을까. 아마도 아버지는 복권에 당첨되면 비좁은 집에서 일곱 식구가 복닥대니 좀 더 큰 집을 사고 싶으셨을 테고, 또 여자만 여섯(엄마랑 딸 다섯)인 아버지의 왕비와 공주들에게 좀 더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5년 전 아버지가 하늘로 여행을 떠나시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엄마는 생전 ‘꽝’ 된 아버지의 꿈을 모아놓은 작은 상자를 열어보며 이만큼의 복권을 살 돈이면 집을 한 채 샀을 거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세상 선한 우리 아버지는 엄마와 딸들밖에 모르는 딸 바보이셨다. 엄마는 여자아이만 다섯이기에 치렁치렁 긴 머리카락이 늘 방바닥에 굴러다니니 머리카락을 집어 들며 잔소리를 하셨고, 책장에 책들이 거꾸로 꽂혀 있는 것을 못 견디는 성격이었다. 늘 깔끔하고 반듯한, 그래서 다소 깐깐한 엄마와는 다르게 아버지는 생전 큰소리를 내거나 우리에게 꾸중 한번 안 하시고 늘 인자하신 모습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따스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향기롭다. 초등학교 때 언니와 나는 아버지 출근길에 같이 집을 나섰다.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언니는 내 손을 잡고 그렇게 집을 나서면 아버지는 우리가 아침밥을 먹고 나왔는데도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언니와 나에게 ‘서울우유’ 한 병씩을 꼭 먹이셨다. 입가에 하얀 우유를 묻히며 마시는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시면서…그때 언니와 나는 아침마다 따스한 아버지의 사랑을 마셨다.

그리고 또 아련한 아버지의 월급날…. 엄마 못지않게 우리 자매들도 아버지의 월급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날은 아버지가 종합제과선물세트와 월간지 ‘소년 중앙’을 사 오시는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둥그렇게 부모님을 둘러싸고 앉아 엄마가 나눠 주시는 웨하스, 새우깡, 맛동산 등 과자와 줄줄이 사탕, 미루쿠(캐러멜) 등을 배급받았다. 그렇게 자신의 몫을 챙겨 줄줄이 사탕을 하나씩 입에 넣고 우리 자매들의 대빵(?)인 언니 곁으로 옹기종기 모였다. ‘소년 중앙’의 메인지는 당연히 언니가 제일 먼저 보는 것이었고, 그다음 큰 부록은 둘째 딸인 나에게로, 나머지는 어린 동생들 순으로 돌아갔고 언니가 메인지를 다 읽어야 비로소 내게 순서가 돌아왔었다.

월간 ‘소년 중앙’에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들장미 소녀 캔디’가 있었고, ‘은하철도 999의 메텔과 철이’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캔디와 함께 울었고 함께 꿈을 꾸었다. 종이 인형으로 출시된 캔디를 가위로 오려내어 이런저런 예쁜 옷과 구두로 치장하거나 머리 장식을 하며 놀았던 기억이 새롭다.

강산이 몇 번씩 바뀌어 천지개벽했다 싶을 정도로 엄청난 발전을 이룬 이 시대에 요즘 아이들은 종이 인형 대신 휴대폰과 아이패드 같은 전자기기를 갖고 논다. 로봇이 매장을 돌아다니며 서빙을 하고, 운전자 조작이 필요 없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도로를 달린다. 휴대폰 하나로 수많은 것을 편리하게 처리하는 첨단화된 세상이지만 그 시절 어리숙하고 말랑말랑한 아날로그 감성으로 따스한 아랫목을 파고들던 그때가 그립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아버지가 사 가지고 오실 종합제과선물세트 속의 미루쿠(캐러멜)와 ‘소년 중앙’ 속 캔디를 기다렸던 아버지의 월급날, 아마도 그날 당신은 또 한 장의 복권을 사셨을 거다. 아니 복권 한 장이 아닌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갯빛 꿈을 한 움큼을 사서 늘 얇은 지갑에 고이 집어넣으셨을 거다. 그러면 간절한 기대와 함께 아버지의 지갑은 금세 두툼해진다. 오늘같이 추운 겨울밤 나는 언제나 따스한 웃음으로, 세상 선한 모습으로 한평생을 사신 그런 따스한 기억 속 나의 아버지가 사무치도록 그립다.

딸 나유미(인천시 체육회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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