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할 만한 남북 ‘국가 대 국가’ 경쟁[기고]

  • 문화일보
  • 입력 2024-02-02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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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출 前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예비역 육군 대장

세계 질서가 요동치고 한반도 정세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장기전에 들어간 우크라이나 전쟁은 동서 냉전을 부활시키고 강대국 간 대결 구도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충돌은 중동지역에 전운을 짙게 드리우고, 미·중 갈등과 대립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키운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자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미국의 대외정책은 신고립주의를 낳아 세계 각국에 각자도생과 반세계화를 촉진하고 지구촌의 연대를 약화시킬 것이다.

한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남북을 더는 ‘동족’이 아닌 ‘적대적 국가’로 규정하고 ‘남조선 영토를 평정할 대사변을 준비’하라고 강조했다. 노골적인 적대 정책을 표명하고 단일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함과 동시에 7·4 남북 공동성명과 남북 기본합의서를 휴짓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힘겨운 도전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어 한반도 안보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이런 마당에 우리가 불확실한 민족 통일을 위해 안보 불안을 언제까지나 끼고 살아야 하는지 깊이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남북이 분단 된 이후 70여 년 동안, 북한은 한국에 먹히지 않고 독재체제를 유지한 가운데 그들 방식으로 무력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핵무기 개발, 대량파괴무기(WMD) 증강, 미사일 발사 등 군사적 도발을 해왔다. 이러한 북한의 행동은 우리에게 상시 안보 불안을 느끼게 하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증대시킨다.

우리에게 남북 문제는 민족과 군사적 위협이 공존하는 이중적·모순적 현실이다. 여기서 파생되는 고통이 이만저만 아닌데도 우리는 지금까지 북한과 나라와 나라 아닌 특수관계에 집착해 왔다. 반면, 세계 각국은 남북한을 각각 독립된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있으며, 명칭도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으로, 한국을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으로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이 서로 합의해 남북관계를 특수관계가 아닌 국가와 국가 관계로 새롭게 규정하고 민족 간 적대부터 우선 풀어야 한다. 통일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갖되 통일로 인해 야기되는 안보 불안을 해소하고 상호 존중과 공동 번영을 가져올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북한은 이에 동의할 것이다. 한국에 흡수통일 되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그들의 의도대로 체제를 지탱할 수 있을 것이다. 연일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아도 한국에 흡수되지 않을 것이므로 무력 도발도 자제할 것이다. 핵무기를 포기해도 한국에 먹히지 않을 뿐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체제 유지를 보장받고 경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우리 역시 잃을 것보다 얻는 게 많게 된다. 북한과 통일 주도권 싸움을 하지 않음으로써 북한의 상존하는 군사적 위협이 줄어들 것이다. 통일 문제에서 발생하는 남남갈등도 해소되고 남북 간 교류와 경제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

남북 간 적대가 해소되고 번영이 이뤄졌을 때 통일은 상호 필요충분조건이 될 것이며 통일 과정도 단순해질 것이다. 남북이 특수관계가 아닌 국가와 국가 관계가 될 것이므로 북한이 한국에 먹힐 우려가 없어지고 체제 유지가 가능해져 북한의 핵무기 개발 명분도 사라지게 된다. 북한 비핵화에 우리의 독자적 노력이 성과도 없으면서 비굴하고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 때도 많았으나, 더는 이런 수모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현재적(顯在的)이고 실체적 위협이다. 생존보다 더 소중한 가치는 없다. 상호 불가침 협약이 체결된 건강한 2국가 체제로 항구적 평화 체제 구축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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