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때 의학 공부한 신여성… 한평생 청빈·봉사·인내한 ‘작은예수’[그립습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4-02-13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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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내가 고교 1학년 때 일본에서 객원의로 일하던 어머니(서영옥·가운데)에게 갔을 때 아버지 구상(왼쪽) 시인과 함께 찍은 사진.



■ 그립습니다 - 어머니 서영옥(1919∼1993)<상>

“오! 위대한 식물이여….” 어느 시인은 그녀에 대해 이런 헌사로 시작되는 시를 쓰기도 했다. “마리아 보살님!” 한 승려 화가는 그녀를 부를 때 이렇게 호칭을 하곤 했다. “그 사람은 세속의 은수자였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영결미사에서 아내를 이렇게 회고했다.

팔불출의 어리석음을 무릅쓰기로 한 나는 이 지면을 빌려 그 훌륭했던 삶의 주인공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나의 어머니 서영옥이 그녀이다.

예수는 2000년 전 남성의 몸을 하고 이 땅에 왔지만 그 뒤를 잇는 작은 예수들은 남녀 어느 쪽의 모습으로도 왔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겠는가. 나의 어머니 또한 여성의 몸으로 왔지만 그들 삶의 특징인 청빈과 봉사와 인내와 애덕을 한평생 추구하고 실천하며 살았기에 한 사람의 ‘작은 예수’였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31년 전 늦가을 밤, 나는 알지 못하는 어떤 남자의 전화를 받고서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처음 듣는 전화 속 목소리는 다짜고짜 나를 꾸짖었다. “천하에 예를 모르는 짓이요! 나중에 부친상 때도 그런 꼴을 보인다면 내, 가만 안 있을 거요!” 한참 후에야 깨닫게 된 그 비난의 배경인즉 이러했다. 그날 오후 나는 만 74세로 영면하신 어머니를 묻고 내려와 조문객들에게 점심을 대접하던 중이었다. 손님들 식사를 챙기고 난 후 어릴 적 친구 몇몇과 한 테이블에 둘러앉았는데, 그중 한 친구가 나를 위로할 셈으로 위트 넘치는 우스갯소리를 한마디 했다. 나는 순간 상주의 신분을 잊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광경을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조문객 한 분이 목격한 모양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분은 아버지의 지인으로 공직에 계시면서 유교 전통 보존에 힘쓰는 분이셨다. 그분이 보시기에 그날 내가 보인 행동은 용납할 수 없는 비례(非禮)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날 나의 속마음이 실제로 어떠했는가를 안다면 그분도 내 ‘돌출’ 행동을 조금 이해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그날 어머니를 떠나보내고도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를 비롯한 다른 가족의 슬픔에 신경이 쓰였을 따름이지, 나 자신은 오히려 좀 환희로운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어머니는 마침내 답답한 육신의 굴레에서 벗어나 무한한 자유와 평화의 세계로 ‘비상’하신 것이다! 선한 사람이 타계했을 때 그의 천국행에 대해 일반적으로 갖는 기대감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어머니가 임종한 순간부터 그 영(靈)이 소용돌이치는 빛 알갱이들에 휩싸여 주위를 환히 밝히고 계시는 듯 느껴져 기분이 고양되어 있었기에 슬픔을 위장하기가 힘들었다. 혹자는 나의 그 느낌을 착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장례를 치르는 내내 실제 영상처럼 강렬하고 또렷하여 머릿속에서 떨쳐지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되뇔 뿐이었다. 어머니는 참으로 좋은 곳으로 가셨구나! 그래서 이리도 내 마음이 환하구나! 그랬다. 나의 어머니 서영옥의 죽음은 그녀를 사랑했던 이들 마음에 그렇게 은혜로운 빛으로 스며들었다.

서영옥은 1919년 원산 태생으로, 일제강점기에 여자의 몸으로 드물게 의학 공부를 한 이른바 신여성이었다. 우리 형제들이 종종 우스갯소리 삼아 어머니의 결혼에 대해 얘기했듯이 ‘팔자를 망치게’ 된 계기는 뜻밖에도 ‘현대 순교자 38위 시복시성’ 후보에 올라 계신 구대준 가브리엘 신부님에게서 비롯되었다. 나중에 그녀의 시숙이 될 구 신부님은 당시 흥남본당의 주임 신부였는데, 다른 병원에서 근무하던 젊은 여의사 서영옥에게 성당의 부속 의료원인 대건의원에서 진료를 맡아주기를 부탁하였다. 이 대건의원 근무가 인연이 되어 그녀는 수녀가 되려던 ‘포부’를 접고 본당 사제의 아우 구상 시인과 혼배를 하게 된다. 이로써 엘리트 교육을 받은 원산 유수의 부잣집 따님이 현실적 능력이 의심스러운 데다 사상마저 ‘불온’한 폐병쟁이 문학청년을 만나 고생길이 훤하게 트인 것이다. 그러나 몸이 약해 한평생 병치레를 이어간 아버지 편에서 보자면 의사인 어머니는 구원의 배필이 아니었으리.

딸 구자명(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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