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실패의 반면교사[오후여담]

  • 문화일보
  • 입력 2024-02-1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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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논설위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근 펴낸 회고록 ‘어둠을 지나 미래로 1·2’는 “헌정사에서 유일하게 탄핵으로 물러난 대통령”의 “후회스러운 결정과 잘못 판단했던 것”에 대한 술회가 무겁게 읽혔다. 사실 교정과 해명, 어려운 정책 결정 과정도 있었지만 반성과 회한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박 전 대통령은 “가슴 아팠던 총리 잔혹사”를 기록했다. 2012년 12월 대선 후 총리로 지명된 김용준 인수위원장, 안대희 전 대법관,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모두 개인 문제로 중도 하차했다. 이완구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70일 만에 사퇴한 최단명 총리가 됐다. 박 전 대통령은 “인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나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썼다.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에 대해선 “가장 처참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피로 누적으로 연가를 신청한 줄로 알고 관저에서 ‘쉬던 그날’은 혼선의 연속이었다. 세월호가 기울어진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된 것은 오전 8시 54분, 대통령이 휴대전화를 받지 못해 직원이 들고 온 보고서를 읽고 사태를 인지한 건 10시 20분. 세월호는 이미 9시 30분쯤 복원력을 상실했고, 10시 30분에 거의 침몰한 상태였다. 그런데 11시쯤 방송 자막에 ‘전원 구조’가 떴다. 안도했다. 11시 20분 구조된 숫자가 적었지만 따져 묻지 않았다. “너무 안이한 판단이었다.” 오후 1시 7분쯤 ‘370명 구조’로 보고됐으나 2시 50분엔 “잘못된 보고”라고 했다. “그제야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빨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가야 했지만 교통 문제로 지연됐고, 호출한 적도 없는 미용사가 와서 머리 손질을 했다. “가장 후회스러운 순간 중 하나”였다. ‘세월호 7시간’에 제기된 의혹들이 “아무런 근거 없는 날조”였으나 “일일이 해명하려 애쓰지 않았다”. 그 때문에 “사실처럼 받아들여져 사회분열과 혼란의 악순환이 발생했다.”

4월 17일 실종자 가족들이 모인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아 조치를 하고, 자신과 직접 연결할 고리로 정무수석비서관을 남겨 놓으려 했으나 주변 반대로 거둬들였다. 그 후 유가족과 청와대 사이에 거대한 불신의 벽이 생겼고, 그 틈을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메웠다. 국정 오판과 실수를 경계하는 징비(懲毖)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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