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단체 ‘증원 반대 파업’ 지나치다[포럼]

  • 문화일보
  • 입력 2024-02-1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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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

정부가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숫자이고, 교육 여건을 고려하면 늘릴 수 있는 최대 규모다. 다른 나라들이 의대 정원을 늘리는 동안 우리나라는 의사협회의 요구로 의대 정원을 거꾸로 줄여왔다. 윤석열 정부가 이번에 성공하면 27년 만에 의대 증원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달성한 정부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 진료대란, 지방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먼저, 의대 증원이 10년 후에 의사 배출을 늘리는 대책이 아니라 당장 국민이 응급·소아·분만 같은 필수적인 의료를 제때 받을 수 있도록 대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늘리는 의대 정원을 대학이 아니라 지역에 배정한 뒤 그 지역의 필수의료를 책임지겠다는 의대와 대학병원에 정원을 배정해야 한다.

대학병원 혼자 모든 환자를 책임질 수 없으니 지역 병원들과 협력해 지역 필수의료를 책임지는 ‘필수의료 네트워크’를 만들게 해야 한다. 정부가 발표한 10조 원 규모의 지원대책을 ‘필수의료 네트워크’에 집중시키고, 대학병원이 교수와 전공의 인력을 지역 병원들과 함께 활용하겠다고 하면 가능하다. 시·도 단위로 필수의료 네트워크가 잘 운영되면 ‘무정부적인 의료체계’를 ‘질서 있는 시장’으로 바꿀 수 있다.

정부는 약속한 대로 실손보험을 개선하고 비급여 진료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그러잖으면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서 응급환자와 중환자를 보는 의사들이 동네병·의원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실손보험과 비급여 진료로 동네병·의원들이 4억 원씩 버는 한 연봉 2억 원 받는 대학교수들이 동네병·의원으로 이직하는 걸 못 막는다.

대학병원은 늘어난 의대 정원을 자기 몸집을 불리는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된다. 정부가 제도를 잘 만드는 것이 우선이지만, 대학병원들도 경증환자 진료를 줄이고 응급환자와 중환자 진료에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 늘어난 의대 정원으로 경증환자 진료를 늘리면 우리나라 의료의 고질인 대형병원 쏠림은 더욱 심해지고, 환자를 빼앗긴 종합병원의 진료 기능이 더 약해지면 역설적으로 필수의료의 공백은 더 커질 것이다.

의사협회도 명분 없는 파업으로 의대 증원을 무산시키려 해선 안 된다. 정부는 지난 1년 동안 28차례나 의사협회와 만나 협의했고, 최근에는 의사협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필수의료 분야의 건강보험수가 인상을 포함해 향후 5년간 약 10조 원을 투자하고, 의료사고에 대한 의료진의 부담을 덜어주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도 약속했다.

정부가 실손보험과 비급여 진료 관리를 강화한다고, 환자 사망 의료사고와 미용성형 진료 과정의 의료사고를 특례법 대상으로 하겠다고 확약하지 않고 논의해서 결정한다고, 문신 시술처럼 꼭 의사가 할 필요가 없는 분야를 자격을 갖춘 다른 인력에 허용하겠다는 것을 이유로 파업하겠다는 건 지나치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만으로는 응급·중증·소아 환자를 진료하는 부족한 의사 수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파업의 진짜 이유라면, 파업하기 전에 대안을 제시하는 게 맞다. 그러잖으면 국민은 이것이 진짜 이유가 아니라 파업을 위한 핑계라고 생각할 것이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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