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실감할 ‘성장 비전’ 내놓을 때다[신보영의 시론]

  • 문화일보
  • 입력 2024-02-1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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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영 경제부장

尹 민생정책 감세만 7조 육박
잇단 대규모 재정사업 발표에
올해도 역대급 세수결손 예고

감세의 낙수효과 기대하지만
기업 활력 되살리기가 더 중요
상속세 개편 등 비전 보여줘야


56조 원. 지난해 역대 최대를 찍은 ‘세수 펑크’ 규모다. 지난해 예산 400조5000억 원의 14.1%로, 본예산 대비 세수 오차율이 2021년(21.7%)·2022년(15.3%)에 이어 3년 연속 두 자릿수다. 가계로 따지면 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은 ‘빚더미’ 상황이다. 중앙정부 채무는 지난해 사상 최초로 1100조 원을 돌파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올해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잇달아 감면 정책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1월 4일 시작해 2월 13일까지 총 11회 진행된 윤석열 대통령 주재 민생토론회에서 발표된 감세 규모만 대략 합쳐도 7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기획재정부·국회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연간 1조5000억 원, 증권거래세 인하 유지에 5년간 총 10조 원, 시설투자 임시투자세액공제 1년 연장과 연구개발(R&D) 비용 세액공제율 상향에 1조6000억 원,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자동차·재산보험료 완화에 연간 9800억 원, 소상공인 전기료 감면에 2500억 원, 노후차 개별소비세 감면에 1180억 원 등이다.

올해 세수 급감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약속한 사업은 수십 개에 달하며, 예산 소요 규모도 상당하다. 당장 정부는 지난 8일 제10차 민생토론회에서 소상공인 126만 명에게 최대 전기요금 20만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는데, 투입 예산이 총 2520억 원이다. 이 정도는 미미한 수준이다. 정부가 1월 25일 제6차 민생토론회에서 발표한 1·2기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연장·신설 예산은 총 134조 원이다. 정부 안대로 이 중 75조 원의 민간 조달이 가능할지도 미지수지만, 구체적 소요 재원 추계도 없는 정부 발표 사업은 더 많다. 지갑은 비어가는데, 비용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어음만 쌓여가는 셈이다.

집권 3년 차에 접어드는 윤석열 정부의 조바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윤 대통령이 지난 7일 KBS 신년대담에서 국정지지율 상승을 위해 “금년에는 더욱더 국민들께서 손에 잡히는, 체감할 수 있는 정책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데에서는 절박감도 느껴진다. 부처별로 진행되던 신년 업무보고 형식을 ‘민생’을 주제로 재편하고, 정부가 아니라 국민을 중심으로 정책을 재구성한 시도 역시 평가할 만하다. 효과도 있다. 윤 대통령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지난 5∼8일 리얼미터(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2.2%포인트) 여론조사에서 직전 조사보다 1.9%포인트 상승한 39.2%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국민이 진정 바라는 것은 감세에 따른 일시적 ‘낙수 효과’가 아니다. 경제학계에서도 낙수 효과는 검증되지 않은 데다, 야당의 ‘부자 감세’ 프레임에서도 자유롭기 어렵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성장에 따른 과실이 골고루 민생에 돌아가는 ‘선순환’이다. 기업이 살아야 임금이 오르고, 가계의 소비 여력이 생기며, 영세·소상공인에게까지 혜택이 돌아간다는 게 경제 성장의 원리다. 지난해 역대급 세수 펑크가 발생한 것도 비중이 가장 높은 법인세가 결손액(56조 원)의 41%에 달하는 23조2000억 원이나 덜 걷혔기 때문인데, 기업 활동이 활발해져야 재정 역시 숨통이 트인다.

경기침체에 일시적 어려움을 겪는 계층을 위한 민생 대책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보다 근원적인 경제 성장의 청사진 마련에 더 집중해야 한다. 반도체 수출에만 목매는 현 경제구조에서는 재정 투입만으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 이후 펼쳐질 글로벌 안보·경제 지형 급변에 대비해 자금도 든든히 준비해 둬야 한다. 감세 역시 항목별로 찔끔찔끔할 일이 아니다. 국내 기업이 평평한 운동장에서 뛰어놀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6%)보다 월등한 상속세율(최고 60%), 역시 OECD 평균(22%)보다 높은 법인세 최고세율(24%) 개편을 위한 작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설 연휴가 지나면서 이제부터 본격적인 총선 국면이다. 정책별 득표수를 미세하게 계산하겠지만, 결국 선거는 바람을 탄 자가 이긴다. 경제정책도 마찬가지다. 경제 성장에 대한 큰 그림을 내놓아야 바람을 만들 수 있다. 그래야 윤 정부가 민생을 위해 내놓은 입법 과제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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