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김부겸의 낮은 자세[이철호의 시론]

  • 문화일보
  • 입력 2024-02-16 11:46
  • 업데이트 2024-02-1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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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고문

與 ‘운동권 정치 청산’ 먹히고
野 “친일파 논리” 본전 못 찾아
치유 불능의 오만함 자성할 때

정의 독점하고 국민 가르치려다
미운털 박힌 운동권들의 갑질
김부겸·장기표의 겸손 배워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운동권 정치 청산을 들고나오면서 여야 간 입씨름이 요란하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독립운동가들을 폄하했던 친일파 논리와 똑같다”고 반격하자 한 위원장이 송영길 전 대표와 우상호 의원을 콕 집어 “어느 독립운동가가 돈봉투 돌리고, 룸살롱 가서 여성 동료에게 쌍욕 했느냐”고 맞받았다. 민주당은 본전도 못 건진 셈이 됐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서 대학 1학년 때였던 1980년 진짜 ‘서울의 봄’을 떠올렸다. 당시 학생운동권은 심재철 서울대 학생회장과 유시민 대의원회 의장이 이끌었다고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김부겸의 연설이다. 당시 학생운동사도 이렇게 기록한다. ‘80년 5월 2일. 서울대 아크로폴리스광장은 1만2000여 학생들로 가득 찼다. 천재적인 대중 연설가인 김부겸(정치학과 76학번)이 연단에 올라 30분간 마이크를 잡았다. 감동적인 연설을 하면서 현장 분위기를 단번에 학생회 지지·유신잔당 타도로 몰고 갔다. 그걸로 상황은 끝이었다.’

2017년 김 행정안전부 장관을 다시 만났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 선명하다”고 하자 돌아온 답변은 뜻밖이었다. “대학 때 데모 좀 했다고 국회의원도 하고 이조판서까지 올랐으니 너무 큰 보답을 받았습니다.” 2021년 국무총리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영의정 감투가 너무 무겁고, 솔직히 두렵기도 하다….” 여배우였던 둘째 딸의 결혼은 일절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고려아연 최창근 명예회장 아들과 작은 결혼식을 넘어 비밀 결혼식 수준이었다. 뒤늦게 친구들이 “너무한 게 아니냐”고 따지자 이렇게 말했다. “부끄러워서 그러지. 젊은 시절 운동할 때 ‘재벌 타도’를 외쳤는데, 막상 딸이 그런 집에 시집간다니 친구나 후배들 볼 낯이 없더라….”

김 전 총리의 부친은 1986년 공군 중령으로 예편했다. 아들이 신군부에 연행되는 등 민주화 운동을 한 죄가 숨은 이유 중 하나로 알려졌다. 하지만 민주화된 이후에도 전혀 내색하거나 자랑하지 않았다. 벼슬이 올라갈수록 자세를 낮추었다.

영원한 재야(在野) 운동권으로 불리는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 9년을 감옥에서 지냈고, 12년을 수배를 피해 도망 다니며 보냈다. 25평 아파트에서 월수입 95만 원으로 사는 그는 10억 원의 민주화 배상금을 받지 않았다. “국민 된 도리, 지식인의 도리로서 할 일을 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그 돈은 박정희 돈도 아니고 전두환 돈도 아니고 국민이 낸 돈이다. 어떻게 그런 돈으로 보상받겠느냐”고 되묻는다.

‘베푼 선의는 물에 새기고 받은 은혜는 돌에 새기라’는 말이 있다. 민주화 투쟁 경력은 남이 평가하고 인정해주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훈장을 마패 삼아 스스로 자랑하기 시작했다. 특목고를 없애자면서 자기 아이들은 특목고에 보내는 ‘내로남불’의 민낯이 드러나기도 했다. 조국 전 장관이 대표적 사례다. 30년 전의 헌신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운동권 출신이라고 진실과 정의를 독점하는 게 옳은지 의문이다. 진실은 오직 하나라고 믿는 건 맹목이며, 그걸 강요하는 건 폭력이다. 그런 이데올로기로 밀어붙인 소득주도성장, 부동산, 탈원전 정책은 참담한 실패로 돌아갔다. ‘개딸’들의 주장처럼 친문 진영이 윤석열을 띄워줘 정권을 넘겨준 게 아니다. 오히려 운동권 출신의 타락에 대한 반작용으로 윤석열 정부가 탄생한 것이다.

민주당은 4월 총선을 앞두고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과녁으로 삼고 있다. 반면, 한 위원장은 운동권 정치 청산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의 공통적 흐름은 지난 한 달간 민주당 지지율은 7∼9%포인트 낮아지고 여당 지지율이 그만큼 높아져 엇비슷해진 것이다. 일단 한 위원장의 전략이 먹혀드는 분위기다. 또 하나 두드러지는 대목은 운동권 출신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응답이 일관되게 절반을 웃돌고 있다. 윤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에 실망이 커지는 만큼 운동권 출신에 대한 반감도 깊어가는 것이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이기려면 같은 운동권 출신인 김부겸의 낮은 자세를 배워야 할 듯싶다. 이미 스스로 독립운동가로 비유하는 데서 치유 불능의 오만함이 묻어난다. 운동 경력 하나로 너무 오래 국민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는 갑질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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