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인 저를 우등생 만든 초교 은사님…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그립습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4-02-20 09:04
  • 업데이트 2024-02-2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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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운 김태영 선생님 관련 사진이 없어 대신 당시 상황을 내가 그림으로 그렸다.



■ 그립습니다 - 고 김태영 선생님

나의 고향은 충북 영동입니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골짝 깊은 골입니다.

일곱 살이 된 3월 어느 봄날 아침밥을 먹고 동네 앞 잔디 벌판에서 아이들하고 공을 차고 굴렁쇠도 굴리면서 신나게 놀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오셔서 범화리에 있는 학교에 가자고 했습니다. 거길 왜 가느냐고 했더니 내가 오늘 1학년 입학하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손을 잡고 1시간여를 논길, 산길을 걸어가니 학교가 보이고 운동장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운동장에 들어섰을 때 학부모들로 둘러싸인 아이들에게 교장 선생님께서 훈화를 하고 계셨습니다. 나도 줄의 뒤에 가서 섰습니다. 참 신기한 광경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범화초등학교의 학교생활은 시간에 늦지 않게 아침밥을 일찍 먹고 비가 오나 눈보라가 치나 책보를 허리에 둘러매고 뛰어가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5학년 때부터는 학교대표 운동선수가 되어서 면 대항 육상대회에서 1, 2등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학교공부는 어렵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특히 산수 시간이 부담스러웠습니다. 2학년 때부터 배우는 ‘28 빼기 19’ 같은 두 자릿수의 뺄셈을 몰라 헤맸습니다. 학교에 가기가 싫어서 억지로 다녔습니다.

부모님들은 앞서 자라던 형, 누나들이 애끓게 죽어서 막내인 내가 그저 잘 커 주는 것만이 소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머리가 길면 어김없이 머리를 깎으라고 성화셨습니다. 그냥 학교를 왔다 갔다 하니까 성적은 언제나 ‘미, 양, 가’ 정도로 밑바닥이었습니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혼자 노래를 즐겨 불렀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형들이 부르는 동요도 따라 부르기도 하고 6·25전쟁 직후라서 어른들이 부르는 전선가요(戰線歌謠)도 잘 불렀습니다.

그런데 내게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4학년이 되어 음악을 잘하시는 선생님이 담임으로 오셨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 되었습니다. 총각이신 김태영 선생님은 바이올린이나 풍금 같은 여러 악기를 능수능란하게 연주하셨습니다. 정규 교과 시간 중에도 틈틈이 노래를 가르치시고 불러보게도 하였습니다. 항상 그러셔서 어느 날은 교장 선생님께서 학교 소사를 시켜 정상수업을 하라고 쪽지를 보낸 적도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내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잘한다고 자주 칭찬을 하시면서 방과 후에도 가르쳐주셨습니다. 선생님과 갈수록 친해졌습니다. 학교 숙직실에서 자취하신 선생님은 나와 같이 가끔 계곡에 가서 가재, 메기 같은 고기도 잡아서 끓여 함께 먹기도 했습니다. 나는 선생님께 잘 보이려고 노력했습니다. 학습 준비물도 빠짐없이 챙겨가고 숙제도 정성껏 했습니다. 그러나 시험성적은 여전히 좋지 않았습니다.

즐겁고 희망찬 4학년 학교생활을 마감하고 이듬해 봄방학을 맞이할 때 통지표를 받았습니다. 그걸 받는 순간 놀라고 어리둥절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만년필로 휘갈겨 쓴 내 성적은 전부 ‘수’였습니다. 종업식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곧바로 달려가서 어머니께 통지표를 보여드렸습니다. “저요, 성적 다 ‘수’예요”라고 말씀드리는 순간 어머니께서는 보름달 같은 환한 얼굴을 내 얼굴에 비벼대시며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게 정말이냐?”고 되묻기까지 하셨습니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공부에 자신감과 함께 책임감도 생겼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했더니 초등학교 5학년 이후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우등상을 받았습니다. 실력에 자신이 붙어서 4년제 명문대학도 꿈꿨으나 교직이 적성도 맞고 집안 형편이 안 좋아서 서울교대를 들어갔습니다. 2년 수료 후에 곧바로 교사가 되고 교장까지 하다가 43년 만에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퇴직 후에도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노래를 계속 불러 요양원에서 노래 봉사를 하며 의미 있게 살고 있습니다. 내 인생의 운명을 보람과 만족이 가득한 삶으로 바꿔주신 김태영 선생님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교감 재직 때는 선생님이 계신 곳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하다가 2005년 신문에 기고까지 했습니다. 반갑게 소식은 들었으나 안타깝게도 선생님은 경기 일산에 사시다가 일 년 전인 2004년에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들었습니다. 못난 제자의 만시지탄(晩時之歎)에 눈물만 흘렸습니다. 선생님, 용서하세요. 사는 날까지 그 은혜 잊지 않고 제 마음속에 품겠습니다.

제자 성명제(전 서울목동초교장·한국어문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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