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오바마’의 배신[오후여담]

  • 문화일보
  • 입력 2024-02-2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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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조코위로 불리는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아시아의 오바마’라는 별명으로 친숙한 지도자다. 1961년생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동갑인 데다가 인상이나 체격, 피부색까지 비슷해 붙여졌다. 인도네시아 최초로 군 경력이 없는 민간인 출신 대통령인 조코위는 2014년 취임 직후 신선한 개혁 정책으로 오바마처럼 대중적 인기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신망이 높았다. 그러나 이제 아시아의 오바마라는 별명을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퇴임을 앞둔 그가 보이는 세습 족벌 행태가 오바마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실시된 인도네시아 대선에서 조명을 받은 인물은 대통령 후보인 프라보워 수비안토(72) 현 국방부 장관이라기보다 부통령 후보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37)다. 조코위의 장남으로 현직 수라카르타 시장이다. 인도네시아 선거법상 정·부통령 입후보 자격은 40세 이상이어서 기브란은 출마 자격이 없다. 그러나 조코위의 매제인 헌법재판소장이 예외를 편법으로 인정해줘 길을 터줬다. 수비안토 후보는 군부 독재 시절 동티모르 독립운동 탄압 혐의로 1998년 민주화 이후 불명예 제대했는데 러닝메이트 덕분에 내달 20일경 발표되는 대선 결과의 승자가 될 것이 확실하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대선을 1998년 이후 최악의 부패 선거라고 했다. 조코위가 퇴임 후 권력 행사를 위해 장남을 부통령으로 세우고 부정선거를 했다는 지적이다.

아시아에서 선거가 권력 세습·족벌 체제 구축의 수단으로 전락한 나라는 인도네시아뿐만이 아니다. 필리핀에서는 1986년 피플 파워로 축출된 독재자 마르코스의 아들이 대통령이 됐다. 캄보디아 훈센(71)은 20년 집권 후 장남 훈 마넷(45)에게 총리직을 넘겼다. 지난해 7월 총선 때엔 야당 유력 후보의 출마까지 저지해 “총선이 장남의 대관식이냐”는 비아냥까지 받았다. 캄보디아 국왕의 훈 마넷 총리 지명은 요식절차였을 뿐이다. 김대중(DJ)·리콴유(李光耀)의 아시아 민주주의 논쟁이 있었던 게 30년 전이다. 당시 DJ는 ‘포린 어페어스’에 민주주의의 보편성을 주장하며 “민주주의가 우리의 운명”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시아 국가들은 여전히 “민주주의는 동아시아에 부적합하다”며 아시아적 특수성을 거론한 리콴유적 수준에 머물러 있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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