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궂은 일 다하시더니… 2월 21일 같은 날짜에 떠난 천생배필[그립습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4-02-21 09:11
  • 업데이트 2024-02-21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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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상협 총재님과 김인숙 여사님 내외의 미소 띤 모습. 언제나 넉넉하시고 너그러우셨던 두 분이 참으로 그립다.



■ 그립습니다 - 김상협(1920∼1995) 총재, 김인숙(1924∼2019) 여사

그립습니다. 남재 김상협 대한적십자사 총재님과 혜천 김인숙 여사님!

‘지성과 야성’의 조화를 일깨우시던 김 총재님은 국무총리와 고려대 총장으로도 헌신하셨고, 여사님께서는 그 일들을 모두 뒷받침하셨습니다. 두 분의 경륜과 덕망을 이 세상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떠난 사람은 날이 갈수록 멀어진다’고 하지만 저는 세월을 거스르는 그리움을 마음에 담고 살아갑니다. 적십자 인도주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사랑과 봉사의 현장에서 늘 문수의 미소로 반겨주시던 두 분과의 지난 세월이 그립고 또 그립습니다.

제 인생의 큰 스승이신 총재님은 1995년 2월 21일 7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사모님은 2019년 2월 21일 95세에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총재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사람들은 두 분을 천운을 타고나신 부부라고 합니다. 같은 날 제사상을 받으니 말입니다.

늘 일기를 쓰셨던 총재님 내외분께서는 하늘나라에서도 일기를 쓰시나요. 사모님은 여행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했습니다. 시작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세계를 돌아보고’ 1권을 출판하고 나서는 다시 책으로 정리할 것을 염두에 두고 날씨와 시간, 그 나라의 생활과 문화 예술품, 음식, 건축 등을 기록했습니다.

천생연분이니, 천생배필이니 하는 말이 있는데 두 분의 만남을 두고 만들어진 표현인 것 같다고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는 생전 사모님 책 서문에 남겼습니다. 두 분이 처음 만나신 것은, 명동국립극장 음악회에서였습니다. 사모님은 경기여고 때 기숙사 생활을 함께했던 선배 소개로 총재님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총재님은 고대 교수, 사모님은 개성공립고등여학교 교사 시절이었지요.

세 번째 만남인 서울역 앞길에서 총재님께서 “결혼을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청혼했으나, 돌아온 답은 “결혼 같은 것 안 해요. 안녕히 가세요”였습니다. 며칠이 지나 총재님은 개성을 찾아갔고, 그 소식을 들은 여사님의 부친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여기까지 왔는데 어찌 여관에 머물 게 할 수 있느냐. 집으로 데려오너라.” 술상을 받은 자리에서 총재님은 꼭 결혼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부친께서 딸을 설득했다고 합니다. “별사람 없다. 내가 보니 사람은 괜찮다. 결혼을 생각하도록 하자!” 만난 지 5개월 만에 결혼을 하시게 된 것이지요.

총재님께서 사회적인 큰일을 하는 데 내조의 힘이 컸습니다. 집안일이나 잡다한 일들은 늘 사모님의 몫이었지요. 사모님은 총재님께서 대한적십자사 일을 맡으시기 전부터 적십자부녀봉사특별자문위원과 위원장, 시립아동병원 원호회장, 대한여학사협회 회장, 지체장애인과 불우아동 돕기 운동 등으로 사회에 기여하셨고, 국위 선양을 위한 활동도 끊임없이 하셨습니다. 각국 대사 부인들은 사모님을 모르는 분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사모님은 아내이자 어머니처럼, 누이처럼 총재님의 음식에서부터 차, 간식까지 손수 챙기셨습니다. 그런 사모님께서 이집트 여행을 가셨을 때, 총재님은 홀로 눈을 감으셨습니다.

총재님 서거 소식에 급히 달려온 사모님을 김포공항에서 뵐 때 흐트러짐 없는 모습에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혜화동 집 앞에 늘어선 근조화에 눈물을 훔치시던 모습도 ….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라고 절규한 만해(萬海) 선생의 시구처럼, 우뚝 솟은 두 그루의 당산나무 거목의 향기가 지금도 후학들의 가슴에 남아 영원히 파고듭니다. 우리 가슴속에는 총재님 내외분의 숨결과 그 미소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전원균(전 대한적십자사 동우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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