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 정치꾼[오후여담]

  • 문화일보
  • 입력 2024-02-2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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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논설위원

“자신의 부고만 빼고 뭐든 신문에 나는 게 낫다.” 전직 대통령의 어록에 수록된 것인데, 정치인에게 이름 석 자를 알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함축한다. SNS 시대엔 “무플(무관심)보다 악플(악성댓글)이 낫다”는 말로 달라졌다. 증오의 정치가 판치는 환경에는 부정적 방식으로라도 유권자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려는 ‘노이즈 마케팅’, 또는 관심을 끌기 위해 도발적인 말과 글, 행동을 하는 어그로(aggro·aggravation의 축약) 정치도 한몫할 것이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9일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행한 ‘차별어 금지 퀴즈쇼’에 잔잔한 파동이 일고 있다. 시각장애인인 김 의원은 “언어는 민주주의와 정치를 움직이는 힘이다. 총선을 앞두고 혐오 표현, 차별 표현 등 막말이 또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면서 즉석에서 비대위원들에게 퀴즈를 냈다. “‘장애를 앓고 있다’가 맞을까요, ‘장애가 있다’가 맞을까요”(한동훈), “‘외눈박이 같다’는 말을 어떻게 고칠 수 있나요”(윤재옥), 회계사인 김경율 비대위원에게는 “눈먼 돈”, 구자룡 비대위원에게는 “절름발이 행정”을 문제로 냈다. 머뭇거리다 답을 맞히는 비대위원들 사이에 연신 웃음이 나왔다. 김 의원은 “증오와 배제의 언어를 몰아내는 것은 정치의 소명”이라며 “막말 마케팅을 하는 정치와 맞서 싸우겠다”고 했다. 지난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코이의 법칙’을 인용해 화제를 낳았던 김 의원이 또 한 번 신선한 퀴즈쇼로 정치권에 ‘차별어’ 경계령을 내린 셈이다.

언어사회학자들이 정의하는 차별어란 특정 대상을 직간접으로 경멸·공격하는 언어 표현이다. 차별 의도가 직접적인 경우가 많지만, 간접 차별어도 있다. 여의사, 여류 작가, 여기자, 남간호사 등이 그러하단다. 존댓말과 반말이 구분되는 한국어 특성상 ‘나이 차별’도 빈번하다. 선거 때마다 노인폄하 등 나이와 관련한 논란이 가장 예민하게 여론에 작용하는 배경이다. 절차 진행이나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때를 이르는 ‘파행(跛行)’도 엄밀하게 따지면 차별어다. 본래 ‘절뚝거리며 걷는다’는 뜻이다. ‘절름발이 국회’라는 표현은 사라졌으나 ‘파행’이란 단어는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혐오 표현과 차별어로 증오 정치 조장에 앞장섰던 막말 의원들이 이번 총선에서 걸러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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