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능 억제하는 ‘공포’… 학문의 기원이자 통제의 원천[서동욱의 세계의 산책자]

  • 문화일보
  • 입력 2024-02-23 09:00
  • 업데이트 2024-02-2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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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죽음, 형벌에 대한 공포는 인간의 본능이지만 인간은 여기서 모험과 호기심, 지식과 덕을 이끌어낸다. 그림은 아드리안 반 위트레흐트, ‘꽃과 해골이 있는 정물화’, 1643년, 개인 소장.



■ 서동욱의 세계의 산책자 - (45) 공포 - 인간을 길들이는 마법

두려움의 본질 통찰한 니체
“형벌제도가 인간본성 길들여
이성·진지함·숙고 탄생시켜”

스피노자는 신학의 위선 비판
“미신 조장 통해 대중을 지배
공포로 야기된 진리는 거짓”


스피노자는 24세이던 1656년, 자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속해 있던 유대 공동체로부터 유대교 교리의 적대자로서 ‘파문’당했다. 1656년 7월 27일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하우트흐라흐트 유대 회당에서 낭독된 파문은 무섭기 짝이 없는데, 한 영혼을 잘게 부수어버리는 저주로 가득한 이 문헌은 다음과 같은 구절들로 이루어져 있다. “율법책에 쓰여 있는 모든 징벌로 그를 저주한다. 그는 낮에 저주받을 것이며, 밤에 저주받을 것이다. 그가 누울 때 저주받을 것이며, 일어날 때 저주받을 것이다. 그가 나갈 때 저주받을 것이며, 들어올 때 저주받을 것이다. 주가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주의 분노와 그의 질투가 그를 태울 것이다.”(이호경 역) 공동체의 법으로부터 추방된 그는 이제 아무나 죽여도 되는 인간이다. 그 죄가 무엇이건 한 공동체는 자신의 일원이었던 인간을 이런 공포에 몰아넣으며 파멸시킬 수 있는가? 그러나 저 파문으로부터 스피노자의 진정한 삶, 공포의 정체를 해부하는 철학자로서의 삶은 시작된다.

공포는 모두가 피하고자 하는 부정적인 감정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공포를 학문과 덕의 기원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우리 마음을 갉아먹으며 슬픔에 빠뜨리는 공포가 어떻게 덕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오래도록 사유했던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한 학자(“양심을 갖춘 자”)를 등장시켜 다음처럼 말한다. 이 학자는 바로 공포가 학문과 덕의 기원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을 보여준다. “공포라는 것, 이것은 인간의 타고난 감정이며 근본 감정이다. 타고난 죄나 타고난 덕 같은 온갖 것들은 공포로부터 설명될 수 있지. 학문이라 불리는 나의 덕도 공포로부터 자라난 것이다.”(백승영 역)

이 학자는 학문의 기원에 공포가 있다고 말한다. 마음 한가운데에 깊숙이 도사린 한 감정으로부터 학문이 비롯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 감정을 ‘내면의 짐승’이라고 부른다. 다시 학자의 말을 들어보자. “이런 길고도 오래된 공포가 결국 세련되어져 정신적으로 되고 정신화되어 오늘날 ‘학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리의 세련된 이성과 학문과 덕의 기원에는 공포가 있다. 그런데 이성이 공포로부터 발생한 것이라는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니체는 ‘도덕의 계보학’에서 보다 더 선명하고 끔찍한 예들과 더불어 이를 보여준다.

“‘사상가의 민족’[…]을 기르기 위해, 지상에서 얼마만큼의 노고가 있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의 고대 형벌 제도를 살펴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김정현 역) 이 민족을 형성하기 위해 요구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형벌 제도를 통해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겁 주기이다. 그렇다면 사상가의 민족을 탄생시킨 고대의 형벌 제도란 어떤 것인가? “예를 들면 돌로 쳐 죽이는 형벌[…], 수레로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 말뚝으로 꿰뚫어 죽이는 형벌, 인기 있었던 살가죽을 벗겨내는 형벌[…], 그리고 또 범죄자에게 꿀을 발라 이글대는 태양 아래 파리 떼가 우글거리게 놓아두는 형벌 등 고대 독일의 형벌을 생각해 보라.”

이처럼 끔찍한 형벌과 그 형벌이 야기하는 공포를 통해 탄생한 것이 사상가의 민족(독일철학자)의 본질인 ‘이성’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와 같은 기억(공포의 기억) 덕분에 사람들은 마침내 ‘이성에’ 이르렀다! ―아, 이성. 진지함, 감정의 통제, 숙고라 불리는 이러한 음울한 일 전체. 인간의 이러한 모든 특권과 사치 : 이것을 위해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지불했단 말인가! 모든 ‘좋은 것’의 근저에는 얼마나 많은 피와 전율이 있단 말인가!…” 이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진지함, 숙고, 자제 등의 바탕에는 인간의 본성을 통제하는 공포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는 학자의 목소리를 통해, ‘도덕의 계보학’에서는 사상가의 민족의 기원에 형벌 제도가 있었음을 드러냄으로써 학문과 덕의 기원에 공포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덕의 탄생은 그저 남의 일인가? 체벌이나 꾸중, 잔인한 훈육을 통해 금지와 금욕의 덕을 가르치는 모든 교육 속에서 우리는 저 무서운 공포의 작용을 발견한다. 우리가 받아왔던 교육도 일면 이런 얼굴을 지녔던 게 아닐까? 그 공포의 작용이 신체보다는 주로 인간 마음을 표적으로 삼지만.

그렇다면 학문이란 우리를 수동적으로 만들고 그리하여 슬픔을 느끼게 하는 작용으로부터 기원하는 것인가? 즉 학문과 이성은 우리를 억지로 본성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함으로써 탄생한 것인가? 그런데 이처럼 학문과 덕의 기원에 공포가 있다면, 우리는 학문과 덕을 자랑스러운 자산으로 여겨도 좋을 것인가? 우리를 길들이는 공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은 니체 이전에 이미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에서 제시된 것이다.

‘신학정치론’은 바로 이 공포에 대한 고발로부터 시작한다. 책의 초두에서 스피노자는 공포가 계속되는 동안에 인간은 미신의 희생물로 전락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공포는 하나의 지식, 하나의 가치, 곧 하나의 덕을 만들어 주되, ‘미신으로서의 덕’만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이는 곧 당대 최고의 학문이었던 신학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함축한다. 스피노자는 신학이 공포로부터 야기된 것이라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진리가 아니라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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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공포는 어떻게 미신의 원천이 되는가? 그리고 사람들을 공포에 빠뜨리는 일은 왜 필요한가? 스피노자는 ‘군중에게 미신보다 강력한 지배자란 없다’는 쿠르티우스의 말을 인용한다. 공포는 일종의 사이비 지식인 미신을 만들어내고, 통치자는 이 미신을 통해 공포에 빠진 대중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포를 통해 생겨나는 지식이란 어떠한 것일까? ‘신학정치론’에서 스피노자는 사람들이 위험이나 곤경에 빠졌을 때 공포에 휩쓸려 이성을 저버리고 신에게 눈물로 도움을 청해 구원을 얻으려 한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공포로부터 출현하는 미신적 지식의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이러한 공포를 불어넣는 일은 왜 필요할까? “극단적 비밀이 종교라는 그럴듯한 외피를 두르고 대중의 눈을 가린 채, 복종을 유지하기 위한 공포를 조장하는 전제국가에서 대중은 자신의 안전만큼이나 예속을 위해 장렬히 싸운다. 게다가 폭군의 허영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수치가 아니라 최고의 영예로 간주한다.”(최형익 역) 공포에 빠진 자는 그 공포를 주는 초현실적인 상상적 존재에 대해 복종하게 되며, 바로 그 복종 속에서 초현실적인 존재에 봉사하는 것을 영예로 여기게 된다. 바로 그 공포로 인해 자신의 본성이 왜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앞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학자는 공포가 인간의 타고난 감정이며 근본 감정이라 말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우리는 늘 공포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것일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들은 늘 우리를 벌하고 혼내는 무서운 것이며 그것에 우리가 복종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들이 실은 공포가 아니라 기쁨을 주는 긍정의 대상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차라투스트라처럼 이렇게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공포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예외적인 것이지. 반면 용기, 모험, 불확실한 것과 시도되지 않은 것에서의 기쁨, 이런 용기가 내 생각으로는 인류의 선사(先史) 전체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자신의 본성에 대해 그리고 그 본성이 발견하는 지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늘 초월적 존재나 지배자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명령과 의무로 알려지는 덕만을 감지하는 것이 아니리라. 본성은 결코 강제로 제한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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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우리는 본성으로부터 유래하는 호기심과 모험심, 그리고 우리 자신의 본성과 욕구를 실현하려는 시도들 속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을 얻고 덕을 획득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지식은 이제 금지의 지식, 무서운 지식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긍정하는 ‘즐거운’ 지식이 될 것이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

■ 용어설명 - 본문 중 언급된 책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5)는 그의 대표작으로서, 서구철학의 전통인 시로 지은 철학서의 범주에 든다. 전통적인 통념, 가치, 종교 등을 그야말로 통렬하게 비판하는 책이다. ‘도덕의 계보학’(1887)은 종교적 금욕주의를 비판하고 그것의 원인인 노예 도덕 및 양심 관념의 원천을 분석한 니체의 후기 저작이다.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1670)은 당대 국가 및 종교의 권위에 의해 개개인의 자유가 억압되고 있다는 사실을 비판한 저작이다. 여기에서 스피노자는 개인의 자유를 인정해 줄 때 공동체가 보다 잘 영위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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