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건천동과 ‘마른냇골’[이기봉의 우리땅이야기]

  • 문화일보
  • 입력 2024-03-04 11:36
  • 업데이트 2024-03-0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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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0일, 퇴계 이황 선생 마지막 귀향길 450주년 재현 행사의 출발 기념식이 경복궁 만춘전 앞에서 개최됐다. 1569년 음력 3월 4일 정오, 퇴계 선생이 경복궁 사정전에서 18세의 임금 선조에게 마지막 하직 인사를 올린 후 출발해 고향 안동의 도산서원을 향했던 14일의 마지막 여정을 재현하기 위한 행사였다. 총 600리(약 270㎞)의 대장정으로,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 버금가는 대한민국의 대표 순례길을 꿈꾼다. 필자는 도산서원 측의 부탁으로 전 구간의 귀향길 고증과 지도화, 그리고 행사 전 11일에 걸친 도보 답사의 안내 책임을 맡아 실행했다. 온종일 25㎞에서 30㎞ 정도를 걸으면서 보고 들으며 느끼는 우리 국토는 형언하기 어려운 색다른 아름다움과 감동을 선사한다.

퇴계 선생 마지막 귀향길 고증은 드문드문 기록으로 남은 여정의 지명과 옛길을 찾아 연결하는 것이었다. 이때 도산서원 측으로부터 전달받은 도성 안의 지명은 경복궁을 나와 서울 집에 잠시 들러 쉬었다는 乾川洞(건천동)이 유일했다. 지하철 2·3호선 을지로3가역 동남쪽 지역을 가리킨다. 우리말 지명인 ‘마른냇골’을 한자로 乾(마를 건), 川(내 천), 洞(골 동)을 빌려 표기한 것이다. 남산에서 흘러내려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하천으로,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고 비가 오지 않는 시기에는 말라 있는 ‘마른내’가 있는 마을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감사하게도 도로명 주소를 만들 때 명동성당사거리부터 광희동사거리까지 이어진 약 2㎞ 구간의 동서도로 이름을 ‘마른내로’라고 붙여 주었다.

‘마른냇골’은 우리나라 최고의 영웅 이순신(1545∼1598) 장군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퇴계 선생 마지막 귀향길이었던 ‘마른내로’를 따라가다 보면 명보사거리 명보아트홀 앞에 ‘충무공이순신생가터’ 표지석이 있다. 1569년 음력 3월 4일, 스물다섯 청년 이순신이 마지막 귀향길의 예순아홉 퇴계 선생을 바라보며 자신의 미래를 다시 설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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