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이웃과 늘 함께한… 봄날의 햇살 같은 당신[그립습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4-03-19 09:12
  • 업데이트 2024-03-19 10:55
프린트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005년 필자(가운데 신랑)의 결혼식날 가족사진. 왼쪽에 앉아 계신 분이 어머니이시다.



■ 그립습니다 - 나의 어머니, 한춘자(1940∼2023)

봄날의 평화
- 산곡동 3

아버지 돌아가시고 열두 해,
어머니는 홀로
빈집에 남기를 원하셨네

세월을 오가며
혼잣말로 대화하며
병상에서는 찾으셨을까

세상 속에서
자식들 곁에서
누리지 못한 평화,

아버지 무덤 곁으로
떠나시며
유산으로 남으셨네

당신 품속 같은
봄날의 햇살 속에서

지난해 하늘나라로 떠나신 어머니는 봄날의 햇살 같은 분이셨다. 이남사녀 육남매 자식들을 혼내시는 경우에도 마지막에는 그 넉넉한 품으로 안아주시던…… 때로 마음에 상처가 남을까 말씀 한마디도 조심하시며 속 깊은 눈길로 품어주시던 어머니. 지금은 아버지 곁에서 자식들과 친지들을 위해서 침묵으로 기도하고 계실까.

젊어서 어머니는 자식들 교육을 위해서 아버지와 함께 시골에서 도시 대처로 나오셨다. 낮에는 남편을 도와 밖에서 일하시고, 저녁에는 온갖 가사를 감당하며 육남매를 키우셨다. 그 수고로움이야 오죽하셨을까. 대가족 집안의 맏누이로서 일찍 돌아가신 외할머니 몫까지 도맡아 하시다가, 결혼해서는 도시로 찾아온 동생들이며 사촌들까지 시댁, 친정을 가리지 않고 챙기셨으니…….

일가친척 한 분 없고 의지할 데라곤 식구들뿐이던 도시 생활. 오히려 그 시절을 어머니는 긍정하시곤 했다. “처음 이사 왔을 땐 돈 한 푼이 아쉬웠지. 봉지 쌀을 사 먹고, 하루 한 끼는 국수를 끓여 먹고. 그려도 너그 아부지랑 너그덜이랑 함께 살아서 좋았서야.” 방 한 칸에서 두 칸으로…… 당신의 집을 갖기까지 그 고단하셨을 고갯길을, 자식들은 제 가정을 꾸려가며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어머니께선 함께 사는 삶을 보여주셨다. 비 오는 날 부침개를 하거나, 잔칫날 떡을 하거나, 명절이 가까울 때면, 멀고 가까운 이웃들,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며 서로 감사하며 같이 즐거워하시던 어머니. 고된 삶에 아버지께서 큰 병을 얻으신 후 곁에서 간병 생활을 하며 웃음을 많이 잃으셨지만, 그런 모습은 거동하실 때까지 늘 변함이 없으셨다.

바쁘신 중에도 동네 공터에 배추며 무며 채소를 가꾸거나, 화분에 고추·상추·깻잎을 심어 기르며 생명을 살리시던 당신의 뒷모습이 눈에 어른거리는 요즘이다. 여러 병환으로 힘드셨던 노후에 저 살기 바빴던 자식들은 뒤늦게서야 당신 사랑의 품속을 알아가는지 모르겠다. 해마다 돌아올 봄날의 햇살 속에서.

아들 박성한(안산고 국어교사·시인)

‘그립습니다 · 자랑합니다 · 미안합니다’ 사연 이렇게 보내주세요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메일 : phs2000@munhwa.com 
△ 카카오톡 : 채팅창에서 ‘돋보기’ 클릭 후 ‘문화일보’를 검색. 이후 ‘채팅하기’를 눌러 사연 전송 
△ QR코드 : 라이프면 QR코드를 찍으면 문화일보 카카오톡 창으로 자동 연결 
△ 전화 : 02-3701-5261
▨ 사연 채택 시 사은품 드립니다.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소정(원고지 1장당 5000원 상당)의 사은품(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전송해 드립니다.
주요뉴스
기사댓글
AD
count
AD
AD
AD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