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올림픽[오후여담]

  • 문화일보
  • 입력 2024-03-2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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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세계 각국의 정치인을 모아 놓고 ‘막말 올림픽’을 연다면 어느 나라가 금·은·동메달을 차지할까. 우선 미국 하원은 ‘품위 규칙’을 통해 상대를 ‘거짓말쟁이’ ‘위선자’라고 부르거나 ‘비겁하게’ ‘적에 부역하는’ 등의 표현을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는 취임 후 첫 ‘총리 질의응답(PMQ)’에서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를 “염소로 소독된 닭(chlorinated chicken)”이라고 불렀다. 존슨 총리는 코빈 대표를 가리키며 “염소로 소독된 닭 한 마리가 내 눈에 보이는데 지금 (의회) 벤치에 앉아 있다”고 말했다. 영국 의회에서는 PMQ 시간에 총리 답변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함을 친 의원도 하루 회의 퇴장 징계를 받을 정도로 엄격하게 적용된다.

아마 우리나라 의원들이 상대방에게 “거짓말쟁이”라고 막말을 했다면 애교 정도로 넘겼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되려면 적어도 ‘바퀴벌레’ ‘수박’ ‘암컷’ ‘GSGG’ ‘불량품’ 정도는 입에 붙어 있어야 막말 좀 한다는 축에 낄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봉주 전 의원은 2017년 7월 4일 팟캐스트 ‘정봉주 TV’에서 “DMZ(비무장지대)에 멋진 거 있잖아요? 발목지뢰. DMZ에 들어가서 경품을 내는 거야. 발목지뢰 밟는 사람들한테 목발 하나씩 주는 거야”라고 하는 바람에 결국 공천 취소됐다. 만약 참전 용사를 우대하는 미국에서 어느 의원이 “아프간에 멋진 거 있잖아요? 발목지뢰. 그거 밟으면 경품으로 목발 하나씩 주는 거야”라는 말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민주당 경기 안산갑에 공천된 양문석 후보의 막말은 정봉주 후보와 더불어 금메달을 다툴 지경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불량품’ ‘가면 쓴 미국인’ ‘한국땅을 밟지 못하도록 공항을 폐쇄해 쫓아내야’라고 했다. 비명계를 향해선 수박, 바퀴벌레 등으로 칭하며 아예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다.

이런 막말은 당내 분위기와 직결돼 있다. ‘개딸’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민주당에선 이들의 입맛에 맞는 얘기를 하지 않으면 바로 보복을 당한다. 조직화된 팬덤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이들의 눈치만 본다. 이번 공천자들을 보면 찐명들은 살아남고, 이들 중 막말로 명성을 떨친 이들도 있다. 총선이 막말 잘하기 대회도 아닌데 지켜보기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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