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 바람둥이일수록 꽃박사, 아시나요…물망초는 ‘꽃말이 꽃이름 돼’[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 문화일보
  • 입력 2024-03-24 11:32
  • 업데이트 2024-03-2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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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남보라색 물망초. 물망초 가운데는 노란색 또는 흰색이다. 3월15일 서울 양재꽃시장



■ 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물망초의 원산지는 독일 등 유럽…물망초 가까운 친척은 꽃마리와 지치
영어 ‘Forget-Me-Not’, 독일어 ‘페어기스마인니히트’(Vergissmeinnicht) 번역
꽃말’은 오스만제국서 유래 …일부다처 문화에서 후첩· 정부와 은밀히 주고받은 암호통신문
‘이슬람 꽃말’이 유럽 상류층으로 전파, 사교활동에 ‘사랑의 코드’로 사용
효능은 다양하며, 주로 항염, 진통, 항균, 항산화, 항암 등의 효과 오랜 세월 사용돼


글·사진 = 정충신 선임기자

<오직/나를 위해서만 살아달라고/나를 잊어선 안 된다고/차마 소리내어/부탁하질 못하겠어요//죽는 날까지/당신을 잊지 않겠다고/내가 먼저 약속하는 일이/더 행복해요//당신을 기억하는/생의 모든 순간이/모두가 다 꽃으로 필 거예요./물이 되어 흐를 거예요.//당신을 사랑합니다.>

이해인 시인의 ‘물망초(勿忘草)’다. 시인은 나만을 사랑해 달라고 애원하며 매달리는 ‘받는’ 사랑 대신 내가 당신의 포로가 되겠다는 ‘주는’ 사랑을 절절하게 갈망한다. 사랑은 추억을 꽃으로 피우고 물이 되어 흐른다.

물망초 잎은 보통 남보라색, 하늘색이며 중심부는 노란색 또는 흰색이다. 유럽이 원산지이고 관상용 한해살이 풀이다. 전체에 털이 많고 뿌리에서 모여 나온 잎은 거꾸로 세운 바소 모양이며 잎자루가 있다. 줄기에 달린 잎은 잎자루가 없으며 긴 타원 모양이다.

꽃은 5∼6월에 피고 한쪽으로 풀리는 총상꽃차례를 이루며 달린다. 화관은 5개로 갈라진다. 물망초는 영어의 ‘Forget-Me-Not’을 번역한 것이고, 영어 이름은 독일어의 ‘페어기스마인니히트(Vergissmeinnicht)’를 번역한 것이다.

물망초의 본고향은 독일이다. 독일 전설에 따르면, 도나우 강(江) 가운데 있는 섬에서 자라는 이 꽃을 애인에게 꺾어주기 위해 한 청년이 그 섬까지 헤엄을 쳐서 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청년은 그 꽃을 꺾어 가지고 오다가 급류에 휘말리고, 가지고 있던 꽃을 애인에게 던져주면서 ‘나를 잊지 말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녀는 사라진 애인을 생각하면서 일생 동안 그 꽃을 몸에 지니고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꽃말이 ‘나를 잊지 마세요’다.

물망초는 14세기 영국왕 헨리 4세에게서 유래된다. 헨리 4세가 이 꽃을 좋아해 자신의 문양으로 정하고 ’이 꽃을 받는 자는 연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연회에서 술에 취해 즉흥적으로 내뱉은 말인 듯 싶다.독일의 애닯은 전설보다는 당시 대영제국 왕실의 압도적인 영향력 탓에 헨리 4세의 한마디가 더 크게 회자된 것 같다.

여하튼 헨리 4세의 사랑 덕분인지 물망초는 신의와 우애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유명세를 탔다.

블루톤의 앙증맞은 물망초의 가까운 친척으로는 꽃마리와 지치가 있다. 모두 지치과의 한 집안이라 꽃모양은 비슷하게 닮았지만 각각 독립적으로 일가를 이루고 있다. 생육특성은 물론 전체적인 외모는 사뭇 다르다.

대부분의 꽃에는 ‘꽃말(Language of Flower)’이 붙어 있다. 사람이 꽃을 빗대어 소통의 뜻을 전달하는 이 꽃말은 하나의 꽃에 여러 개 꽃말이 있기도 하고, 꽃색깔이 다르면 상반된 의미의 꽃말이 되기도 해 헷갈리기 일쑤다. 꽃의 배열순서나 꽃송이 수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꽃말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나를 잊지 마세요(Forget-Me-Not)’ 물망초(勿忘草) 다. ‘나를 건드리 마세요(Touch-Me-Not)’인 봉선화(鳳仙花)도 꽃말이 꽃이름이 된 경우지만 ‘물망초’는 한자 이름과 영어 이름이 일치한다. 꽃말이 워낙 인지도가 높아 그 자체가 대표이름(common name)이 됐다고 한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돈의문박물관마을 정원에 블루톤 물망초와 운간초(천상초)가 함께 피어있다. 2022년 5월21일 촬영

꽃말은 서구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아는 분이 많다. 하지만 뜻밖에도 14세기 이슬람이 꽃말의 발상지다. 튀르키예를 중심으로 오스만제국이 유럽과 지중해 중동에 걸친 광대한 제국을 500년간 통치하며 풍요를 구가할 당시 이 꽃말이 생겼다고 알려져 있다. 꽃말은 다름아닌 일부다처 이슬람 문화에서 후첩이나 정부(情婦)와 은밀히 주고받는 일종의 암호통신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슬람의 꽃말이 유럽 상류층으로 전파됐고 더 다양한 용도로 확산됐다고 한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는 사교활동에서 꽃선물이나 꽃 액세서리가 크게 유행하면서 꽃말은 더 세분화되고 체계화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게임을 하듯 은밀한 ‘사랑의 코드(love code)’를 해독하기 위해 앞다투어 꽃에 대한 지식 습득에 나섰다. 그러다 보니 바람둥이일수록 꽃박사였다고 알려져 있다. 거리마다 꽃집이 우후죽순 생기고 수많은 꽃말사전들이 출간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꽃의 전성시대, 꽃의 르네상스 시대였다.

19세기 후반 일본 메이지유신을 통해 흠모하던 서구 문화를 열렬히 받아들인 일본은 당연히 꽃말까지 그대로 수용했다. 이후 원예산업이 커지면서 자체적으로 꽃말을 만들어 붙이고 보급했다. 여기에도 이른바 ‘화혼양재(和魂洋才), 즉, 화혼(일본 전통 정신), 양재(서양 기술), 일본의 자국 것이 혼(魂)이고 서양 것을 재(才)로 삼는다는 일본 근대화시기 구호가 그대로 통용된다. 주로 종묘회사나 화훼유통 기업들이 이 일을 주도했다. 우리나라는 일제시대 일본이 정리해서 사용하던 꽃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물망초는 그 이름 덕에 수많은 가요의 노랫말에 단골 레퍼터리로 등장하고,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제목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꽃이 됐다. 국군포로 및 북한이탈주민을 지원하는 민간기구도 사단법인 물망초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남보라색 물망초. 3월15일 서울 양재꽃시장에서

물망초는 의외로 이름 만큼이나 약효도 뛰어나다.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의료 용도로 사용되어온 식물이다. 효능은 다양하며, 주로 항염, 진통, 항균, 항산화, 항암 등의 효과를 갖고 있다.특히 물망초는 염증을 억제하는 항염 효능이 있다. 염증은 다양한 질환의 원인이 되며, 관절염, 류마티스, 피부염 등 다양한 염증성 질환의 치료에 효과적이다. 물망초는 염증을 억제하고 관련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물망초는 강력한 진통제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근육통이나 두통과 같은 일상적인 통증을 완화시키는 데 효과적이며 생리통이나 관절통과 같은 만성적인 통증에도 효과적이다.

물망초는 항균 효과가 있어 다양한 종류의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항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감염 예방 및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피부 감염, 구내염, 요로 감염 등의 치료에 효과적이다. 물망초에는 다양한 항산화 물질이 함유돼 있어 세포 손상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신체의 산화 스트레스를 줄이고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물망초에는 항암 효과가 있는 화합물이 함유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물망초 사용 시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물망초는 일부 사람들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으며, 과도한 복용은 위장장애를 유발할 수 있으니 적절한 용법 및 용량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정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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