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배지 줍는 후보부터 심판하라[오승훈의 시론]

  • 문화일보
  • 입력 2024-03-2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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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논설위원

프레임 전쟁 속 인물경쟁 실종
유력 정치인 총선 성장판 닫혀
李 강북을 공천 笑劇이 대표적

낙하산·막말·범법 후보 수두룩
화려한 이력보다 기본 인성 갖춘
후보 가리는 것이 유권자 사명


4·10 총선이 25일로 사전투표까지 불과 11일 남았다. 인물·구도라는 선거 요인 가운데 이슈는 ‘거야 심판 vs 정권 심판’이 격돌하고 있다. 선거의 성격을 규정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프레임 전쟁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본질, 후보 심판이 묻히고 있다. 이번 선거는 지역구 254석, 비례대표 46석 등 국회의원 300명을 뽑는 총선이다. 개인 자체가 입법권을 가진 헌법기관이고, 차관급의 선출직 공무원이며, 국회를 주도할 중요 정치인을 가려내는 선거다.

1987년 민주화 이후 13대부터 21대까지 9번의 총선을 거쳤는데, 국가 사회에서 정치의 역할은 갈수록 선진보다 후진했다. 경제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 분화도 커졌는데 이를 대변하는 대의민주주의는 진전되지 않았다. 되레 진영 양극화와 집단주의의 퇴행적 정치가 심화했다. 세계적 현상이라는 민주주의의 위기 진단과 성토에 묻어갈 수는 없다. 한국만의 원인이 있다. ‘새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여의도 정치에서 국회의원이 탄생하고 유력 정치인으로 커가는 성장판이 닫혔다. 자신만의 정치철학으로 의정 경험을 통해 리더십을 키워가는 경로가 실종된다는 의미다. 거칠게 정리하자면, 전직 대통령의 딸과 친구가 대통령이 되더니 지난 대선에선 의원 경력 0선의 두 인물이 맞붙었다. 이번 총선도 대결 구도에선 변한 게 없다. 그 배경은 인물 배출 실패다.

새 인물이란 정치 신인이 아니다. 새롭게 대중의 주목을 받는 정치인을 말한다. 신인이라고 참신한 것도, 다선이라고 퇴출 대상인 것도 아니다. 자질과 소양을 갖췄느냐다. 여야 모두 공천 혁신을 내걸었으나 한쪽은 무사안일, 다른 쪽에선 사당화로 일관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서울 강북을 공천 소극(笑劇)이 대표적이다. 칼만 들지 않은 ‘이재명식 숙청’ 경선을 세 번이나 치렀다. 현역 평가 하위 감점, 경선 차점자 1위 승계 불가, 지역 경선에 전국 권리당원 동원이라는 불공정을 우겼다. 그러고도 성범죄 가해자 전문 변호사를 공천했다가 후보 등록 마감 6시간을 앞두고 바꿨다. 36년간 승리한 곳이니 무슨 수작을 해도 이긴다는 오만과 권력욕이 정치인들을 질식시켰다.

그러는 사이 낙하산, 막말 후보만 득세했다. 같이 근무했다고 공천장을 받고, 배우보다 당 대표가 잘생겼다고 한 인사가 후보가 됐다. 그 대표의 측근을 변호해줬더니 서류심사 4위인데도 경선에 올라 공천장을 거머쥐었다. 전직 대통령을 ‘실패한 불량품’ ‘매국노’라 하고, 반대파를 ‘바퀴벌레’ ‘수박’이라고 조롱해 도덕성 0점을 받은 인사도 후보 자격이 유지됐다. ‘5·18 폄훼’ ‘난교’ 발언 논란 후보들은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혐오를 정치수단으로 삼은 후보들이 낯 두껍게 출마했다.

범죄자들은 더 가관이다. 이번 총선 출마자 중 범죄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이 최소 34명(패스트트랙 기소 포함)이라고 한다. 3개 재판이 진행 중인 이 대표가 포함됐음은 물론이다. 조국혁신당은 당선권이라는 비례대표 10번까지 4명이 수사·재판 중이다. 이들에게 사법 시스템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확정 판결까진 임기가 보장되는 탓이다. 두 달 남짓 임기가 남은 21대 국회의원 중에도 27명(지역구 25명, 비례 2명)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선거법 위반 사범도 마찬가지다. 공직선거법은 6개월 이내 1심 판결, 2·3심은 하급심 이후 3개월 이내 판결을 규정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1심 재판은 1년째 하고 있다. 지역구 후보자의 34.6%, 3명 중 1명이 전과자라고 해도 놀랍지가 않다.

인물 선택에 국가 정체성, 시대정신, 미래지향 등 거창한 자격을 논하자는 게 아니다. 그런 척하는 화려한 이력의 후보는 십중팔구 위선자다. 여의도 정치는 공익·민생과 괴리가 된 지 오래다. 국익보다 권력의 이익을 우선한다. 그러니 기본적인 인성을 놓고 가려내는 게 최선의 선택법이다. 거짓말이 서툰 솔직 후보, 부끄러워할 줄 아는 염치 후보, 혐오 발언을 하지 못하는 어눌 후보, 아첨엔 미숙한 선비 후보, 뒷돈 챙길 줄 모르는 고지식 후보, 권력에 줄 서지 못하는 바보 후보가 수백 배 낫다. 그래야 여소야대가 되건 여대야소가 되건 상식적 정치가 이뤄진다. 길에서 배지 주우려는 후보부터 심판해야 한다. 유권자의 시대적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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