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매(梅)[오후여담]

  • 문화일보
  • 입력 2024-03-2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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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고문

이번 봄에 SNS 친구들이 가장 자주 올려준 사진은 홍매화다. 그중 화엄사 홍매화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예로부터 매화는 선비의 절개를 상징했다. 한겨울에 눈을 맞으면서 피는 설중매가 으뜸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하얀 꽃에 꽃받침이 녹색인 ‘청(靑)매화’를 가장 높게 쳤다. 붉은색을 좋아하는 중국은 오래전부터 홍매화를 최고로 쳤는데, 그런 홍매화가 슬그머니 한국에서도 인기를 끄는 것이다.

높이 9m의 ‘구례 화엄매(梅)’는 오래전부터 전국에서 알 만한 사진가들을 불러 모은 명목이었다. 조선 숙종 때 계파 선사가 심은 300년 넘는 수령에다 빼어난 자태, 천년 고찰(古刹)과 어우러진 검붉은 홑꽃잎이 압권이다. 그동안 국가 유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는 순천 선암사 선암매, 강릉 오죽헌 율곡매, 장성 백양사 고불매, 화엄사 들매화 등 4건. 여기에 지난 1월 화엄매가 더해지면서 올해 유난히 화엄매 사진이 많이 퍼졌다.

화엄매는 2020년 화엄사가 사진 콘테스트를 열면서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고양이가 조용히 앉아 있는 풍경 뒤로 멀리서 붉은 꽃이 불타는 사진, 쏟아지는 새벽빛 속에 붉은 꽃잎을 틔우는 모습, 안개가 휘도는 산속에서 붉은 꽃잎이 절반쯤 낙화한 사진 등이 차례로 최우수작에 뽑혔다. 화엄매가 절정인 3월에는 전국에서 가장 핫한 포토존으로 입소문이 났다. 스님들 수행을 위해 산문 개방을 오전 7시∼오후 8시 30분으로 제한하지만, 카메라 삼각대를 펼칠 공간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사찰에 매화나무를 심은 이유는 단지 꽃구경 때문은 아니다. 약이 귀한 시절, 매실은 기력 회복과 소화에 도움이 됐다. 겨울철 동안거를 마친 수도승들에게 매실 장아찌와 매실 발효액은 최고의 사찰 요리였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명목들이 언제까지 버텨줄지 기약하기 어렵다는 것.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직접 가꾼 수령 600여 년의 율곡매는 나무의 90%가 고사해 천연기념물 해제 위기까지 갔다가 대대적인 뿌리 치료 끝에 간신히 한쪽 줄기가 살아났다. 화엄사 들매화도 기존 4그루 중 3그루가 죽고 1그루만 살아남았다. 이상기후도 심상치 않다. 올해 화엄사는 제4회 사진 콘테스트를 지난 23일 종료하려다가 꽃샘추위로 개화가 늦어져 이달 31일까지로 연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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