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팀킬’ 악연과 우연[뉴스와 시각]

  • 문화일보
  • 입력 2024-03-2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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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영 체육부 차장

최근 쇼트트랙계가 뒤숭숭하다. 얼마 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팀 킬(Team Kill·게임에서 같은 편을 공격하거나 죽이는 논란)’까지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한국시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끝난 2024 국제빙상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 1000m와 1500m 결승전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대헌(강원도청)이 올 시즌 월드컵 랭킹 1위인 박지원(서울시청·단국대)을 상대로 두 차례나 반칙을 저질렀고, 두 선수는 모두 메달을 따지 못했다.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노 골드’로 대회를 마쳤는데, ‘노 골드’는 2016년 이후 8년 만이다.

쇼트트랙은 몸싸움이 치열한 종목이다. 경기 중 충돌 상황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황대헌이 박지원에게 반칙을 한 건 이번 시즌에만 벌써 세 번째다. 지난해 10월 월드컵 1차 대회 1000m 2차 레이스 결승에서도 황대헌은 앞서 달리던 박지원을 뒤에서 밀쳤다. 당시 황대헌은 이례적으로 옐로카드를 받았다. 옐로카드는 위험한 반칙을 했을 때나 주어지며, 그 대회에서 딴 모든 포인트가 몰수된다. 우연이 겹치면 의도한 것으로 읽힌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치고 ‘한국 선수들의 충돌을 예상했다’는 해외 메달리스트들의 인터뷰가 연이어 쏟아져 나왔다.

논란이 일자 대한빙상경기연맹은 곧바로 사건 조사에 착수했고, 25일 “고의성은 전혀 없었다. ‘팀 킬’을 하려는 의도 또한 있지 않았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또, 황대헌은 “(박)지원이 형과 만나서 이야기할 것이다”라며 사과 의사를 드러냈다.

그런데 일각에선 선수 간의 단순한 경쟁심이 아니라 빙상계의 해묵은 ‘파벌싸움’이 이번 사태의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황대헌과 박지원이 각각 한체대, 비(非)한체대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빙상계 파벌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 한국 쇼트트랙은 한체대 출신과 비한체대 출신으로 양분됐는데, 빙상계를 좀먹어 왔던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됐다. 게다가 박지원은 황대헌보다 3세 위다. 선후배 간 위계질서가 매우 엄격한 우리나라 스포츠에서 무려 3차례나 같은 상황에서 반칙을 저질렀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일단 이번 충돌 파문은 몸싸움에 능하고 공격적인 주행을 펼치는 스타일인 황대헌의 돌발행동으로 마무리되는 모습이지만, 뒷맛은 영 개운치가 않다. 아쉬움이 남는 점은 선수의 태도다. 황대헌이 진상조사에 앞서 진심 어린 사과, 진솔한 대화가 조금 더 일찍 이뤄졌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쇼트트랙은 한국 동계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을 세웠다. 특히, 쇼트트랙은 역대 동계올림픽 전 종목을 통틀어 가장 많은 금메달(26개)을 수확했다. 그러나 2006 토리노동계올림픽 직후 불거진 쇼트트랙 파벌 문제부터 구타, 승부조작(짬짜미) 등으로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심지어 몇 해 전엔 코치가 선수를 성폭행하는 문제까지 터져 나왔고, 쇼트트랙은 국민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스포츠 종목으로 낙인 찍혔다.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쇼트트랙이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드러난 ‘막장 드라마’ 같은 행태가 제발 우연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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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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