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 대원칙과 유연성[뉴스와 시각]

  • 문화일보
  • 입력 2024-04-0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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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은 정치부 차장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지켜본 여권 한 관계자는 “지극히 ‘윤석열스러운’ 연설”이라고 평했다. 외부 압박에도 개혁에 대한 원칙을 포기하지 않은 점을 높이 산 것이다. 대국민 담화에 대한 평가야 엇갈릴 수 있지만, 쉬운 언어로 의사 집단행동의 본질을 짚고 의료개혁 원칙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 대목은 분명 인상적이었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의사 증원을 막기 위해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역대 정부와 ‘9번 싸워 9번 모두 이긴’ 기득권자들이 오로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진료거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 눈치를 보지 않고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의사들이 진료와 수술을 하지 않으면, 국민은 치료를 못 받고 생명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을 인질로 붙잡고 ‘목숨값’을 요구하는 일을 대개 영화에서나 본다. 의대만 나오면 ‘선생님’ 소리를 듣는 의사들이 이 영화 같은 일을 50일가량 벌이며 국민을 겁박하고 있다.

더 고약한 것은, 의사들이 ‘선거철’이라는 점을 대놓고 이용한다는 점이다. 임현택 의협 차기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의협 손에 국회 20∼30석 당락이 결정될 만한 전략이 있다”고 했다. 정부를 사실상 협박하는 그의 말에 “저런 사람에게 우리 아이들 진료를 맡기고 있었다”며 국민은 아연실색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의료개혁에 관한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은 옳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표가 급한 이들은 “대통령이 조금 물러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꼭 맞는 말은 아니다. 다음 주가 선거라고 아무런 명분 없이 국가 정책을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이야말로 코미디 같은 일이다. 이익 단체가 가진 표의 힘이 강력하다고 해서 슬그머니 물러서는 일은 대통령이 헌법 책무를 포기하는 일과 같다. 더구나 이 같은 결정은 표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희생, 헌신, 책임’을 핵심 가치로 삼는 보수 유권자들이나, 그간 의사 집단행동 사태를 인내한 많은 국민은 이유 없는 정부의 갑작스러운 ‘정책 유턴’을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야당 지지자가 이 결정에 반색해 지지 방향을 바꾸는 일은 더욱 없을 것이다.

다만, 윤 대통령이 크게 유념할 점은 있다. 윤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정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묻고, “바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 답했다. 이게 정치의 본질이 맞다면, 일부 국민은 대통령이 정치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의사를 증원하는 게 필요한 일이지, 반드시 2000명 증원을 고수하는 게 필요하진 않다. 정부의 해명과 상관없이, 많은 국민은 증원 규모 결정 과정이 ‘일방통행’식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의료개혁의 원칙과 방향성에는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그 과정에는 의문을 표시하는 국민이 있는 이유다. 뒤늦게라도 2000명 조정에 여지를 두며 의료계와의 대화에 적극 나서는 점은 평가할 만한 일이다.

윤 대통령의 말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정치지만, 타협·공존의 공간을 넉넉히 두는 것도 정치다. 큰 틀의 의료개혁 원칙을 올곧게 유지하되, 갈등 관리와 통합을 위해 정책 유연성을 동시에 발휘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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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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