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의 다키스트아워[뉴스와 시각]

  • 문화일보
  • 입력 2024-04-0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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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진 국제부 차장

2017년 개봉된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영국 총리로 재직했던 윈스턴 처칠의 행보를 다루고 있다. 제목인 ‘다키스트 아워’는 ‘가장 어두운 때’라는 뜻으로, ‘동이 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The darkest hour is before the dawn.)’는 영문 속담에서 비롯됐다. 처칠이 신임 총리로 임기를 시작한 1940년 6월 18일 하원 연설에서 인용한 표현이다.

당시 영국은 독일과의 프랑스 공방전에서 대패하고, 덩케르크 철수를 단행한 이후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내부 상황도 심각했다. 항전파였던 보수당의 처칠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정치적 곤경에 빠졌다. 독일이 유럽 전역을 점령하자 당내 협상파들이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과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처칠 총리를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위기의 순간 처칠 총리에게 힘을 실어준 건 ‘정적’이었던 노동당 당수 클레멘트 애틀리였다. 애틀리는 당내 협상파들을 비판하고 처칠 총리를 지지했다. 처칠 총리는 제1야당인 노동당과 전시 연립내각을 구성했다. 애틀리를 부총리로 임명했고, 노동당에 노동장관과 내무장관 자리를 내줬다. 전쟁과 외교는 처칠 총리를 중심으로 한 보수당, 내치는 노동당이 맡는 연립정부였다. 일종의 대연정이다. 독일 나치와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던 처칠 총리 연립내각은 미국과 소련이 참전할 때까지 버티며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이러한 처칠 총리의 협치에 관한 일화를 담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 일화를 국민에게 널리 알려준 사람은 다름 아닌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2022년 5월 16일 취임 후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연립내각 모델을 언급하며 국회에 초당적 협력을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은 전시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국가가 가진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위기에서 나라를 구했다”면서 “각자 지향하는 정치적 가치는 다르지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손을 잡았던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압도적인 의석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립내각을 사례로 제시하며 협력을 당부한 것이다. 하지만 국내 정치는 영국과 달랐다. 야당은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고, 정부와 여당은 제대로 된 양보조차 하지 않았다. 문제는 윤 대통령에게 ‘다키스트 아워’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제22대 국회에서도 ‘여소야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대세다. 범야권이 이번 총선에서 최대 200석까지 얻을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이 경우 야당과의 협치가 없으면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은 사실상 마비된다. 윤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연금·노동·교육 등 3대 개혁을 위해서라도 야당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윤 대통령이 존경하는 처칠은 민주주의를 모든 정치 제도 가운데 최선으로 꼽았다. 대화와 타협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는 점은 윤 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총선 이후 나올 정부와 여당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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