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싱 랠리[오후여담]

  • 문화일보
  • 입력 2024-04-0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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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고문

안전자산인 금과 위험자산인 주식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경제 상식이다. 불황엔 금값이 오르고 호황 때는 주식이 오른다. 이런 상식을 깨고 올 들어 모든 자산 가격이 오르는 기형적인 ‘에브리싱 랠리(everything rally)’가 이어지고 있다.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은 물론 원유, 가상화폐, 농산물까지 안 오르는 게 없다.

그 배경엔 달러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무려 7조 달러가 풀려 유동성 과잉 상태다. 여기에 금리 인하로 달러 가치가 떨어질 것에 대비해 안전자산인 금 매입 열풍이 불고 있다. 금 가격은 올 들어 12% 올라 사상 처음 온스당 2300달러를 돌파했다. 위험자산인 미 주식까지 동반 상승한 데는 금리 인하 기대감에다 기업 실적 호조도 호재로 작용했다. 가장 놀라운 랠리는 상장지수펀드(ETF) 승인과 반감기를 앞두고 올 들어 93%나 폭등한 비트코인이다.

지정학적 영향도 적지 않다. 중국은 미·중 갈등으로 미 국채를 매도하는 대신 지난해 225t의 금을 매입했다. 금 사랑이 유별난 중국인들도 부동산이 흔들리자 금으로 눈을 돌렸다. 국제유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중동 불안이 뇌관이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면전 가능성으로 두바이산 원유는 배럴당 90.5달러로 치솟았다.

서서히 에브리싱 랠리의 역풍도 불기 시작했다. 국내에선 예·적금에서 14조 원 넘게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미 금리 인하 가능성도 급속히 낮아지고 있다. 금·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무차별로 상승하면서 다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진 때문이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기준 금리를 내리려면 물가 압력이 완화되고 있다는 더 큰 확신이 필요하다”며 신중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전 세계 인플레이션이 ‘울퉁불퉁한(Bumpy)’ 길로 내려오고 있다. 에브리싱 랠리 이면에는 미 상업용 부동산의 공실률이 16.9%에 달하는 등 곳곳에 위험한 지뢰밭이 널렸다. 언제 어디서 지난해처럼 뱅크런이 터질지 모른다. 그동안 물가만 지켜보던 한국은행은 “높은 가계대출과 주택 가격도 통화 완화 때 고려해야 할 핵심 변수”라고 밝혔다. 섣불리 금리를 내렸다간 아파트 거품과 가계 빚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안개 자욱한 ‘모호성’의 바다로 진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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