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서로에게 아름다운 존재” … 시인이 가야할길 보여주신 ‘큰산’[그립습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4-04-0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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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23년 8월, 김남조(왼쪽) 시인이 타계하기 두 달 전에 한국시인협회 평의회에 참석해 당시 시인협회 회장인 유자효 시인과 함께 찍은 사진. 유자효 시인 제공



■ 그립습니다 - 한국 시단의 모성 김남조 시인(1927∼2023)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 시인의 젊은 시절과 중년의 모습. 연합뉴스

김남조 선생은 나의 20년 연상인 1927년생이시다. 내 어머니가 1928년생이시니 어머니보다 한 살 연상이셨다. 그러니 내게는 어머니 같은 분이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나는 선생을 어머니를 뵙는 마음으로 대했다.

선생은 후배 문인들에게 밥을 사주는 것을 좋아하셨다. 문인들이 밥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며 흐뭇해하셨다. 또 노래 듣기를 좋아하셨다. 후배들에게 노래를 시키곤 듣는 것을 즐겨 하셨다. 그러나 후배 시인들이 아무리 보채도 선생의 노래를 들을 수는 없었다.

2023년 10월 10일, 선생의 큰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니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돼 나를 급히 만나야겠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문인단체인 사단법인 한국시인협회는 회장을 지낸 분이 돌아가시면 협회장으로 장례를 치른다. 선생은 24대 회장이시다. 나의 꼭 20대 선배 회장이시다. 그래서 당시 회장인 나를 만나 장례 문제를 협의하기 위함이었다. 저녁에 만나기로 했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오늘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아 내가 있는 곳으로 당장 오겠다는 것이다. 집 앞에서 기다리니 큰아들이 운전하는 승용차가 당도했다.

선생은 평소에 내가 뵙던 모습과 너무나 달라 깜짝 놀랐다. 앙상하게 여윈 모습에 숨을 목으로만 가늘게 쉬고 계셨다. 아들이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유자효 회장께서 오셨습니다.”

내가 “선생님!” 하고 부르자 꿈틀하시는 것이었다. 분명 듣고 계셨다. 나는 후배 시인들이 선생의 용태를 몹시 걱정하고 있다는 것, 아무 염려 마시고 마음을 편히 가지시라고 말씀드렸다.

곧이어 조광호 신부가 들이닥쳤다. 조 신부는 서둘러 종부 성사를 진행했다. 지난해 겨울, 선생께서 인천 동검도로 조 신부를 뵈러 오겠다는 전갈이 있었다 한다. 동검도에는 조 신부의 작은 채플이 있고, 갤러리도 있다. 그런데 그날 아침, 영하 15도의 기록적 한파가 밀어닥쳤다. 조 신부는 전화를 걸어 “날씨가 매우 추우니 다음에 오시는 게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신부님, 제게는 날씨가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라며 혹한을 뚫고 오시더라는 것이다. 그러고는 동검도의 일몰을 보며 “아름답다. 아름답다”라고 감탄하시더라는 이야기였다.

임종 시에 평소와 너무나 다른 모습에 충격을 받았던 나는 입관식에서 평온한 모습을 보고 안도하였다. 이미 천국에 드셨고, 그리워하던 부군을 만나셨음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육신도 부군의 곁에 안장되었다. 지난해 11월 1일 ‘제37회 시의 날’에는 ‘광화문에서 시를 노래하다’ 행사가 펼쳐졌는데, 김세중 교수의 작품인 충무공 동상 옆에서 나태주 시인이 추모 시를 읽어 의미가 새로웠다. 장년에 다리를 다쳐 휠체어에 의존하셨고 종종 매우 아파하셨는데 이제 지상의 고통에서 벗어나 훨훨 날아다니시리라.

선생은 시단의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어른이셨다. 대소사들을 챙겨주시고, 한국 시단에 더 좋은 시인이 나타나도록 애써주셨으며 한국시협을 더 좋은 단체로 만들기 위해 힘써주셨다. 우리 문단의 큰 산맥 같은 분이었다. 한국 현대문학의 증인이기도 했다. 선생께서는 늘 진심으로 말씀하셨다. 농담도 잘 하지 않으셨다. 나는 선생께서 가식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선생께서는 말씀하셨다. “유 선생이 운전하는 차로 인천에 다녀옵시다.” 그냥 갔다 오자는 말씀이었다. 또 어떤 때는 “버스를 한 대 빌려 몇몇 사람과 여행을 한 번 갑시다”라고도 하셨다. 그때도 어딜 가자는 것이 아니라 그냥 떠나보자는 말씀이었다. 보행이 불편하셨던 선생께서는 그렇게 여행의 꿈만 꾸셨다. 늘 계획에만 그친, 결국 성사되지 못한 짧고 긴 여행들이 나는 슬프다.

선생은 사랑에 대한 믿음으로 1000편이 훨씬 넘는 시를 쓰셨다. 6·25 전쟁의 혼돈에서 “어느 산야에 구르는 돌멩이처럼 목숨만 갖고 싶다”고 하신 선생께서는 마지막 시집 ‘사람아 사람아’에서 “결국 사람은 서로 간에 아름다운 존재”라는 대긍정의 세계를 이루셨다.

회고의 글을 쓰는 이 시간, 시인이 가야 할 길을 보여주신 김남조 선생이 사무치게 그립다.

유자효 시인(전 한국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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