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J 심슨, 암 투병 사망…전처 살해 혐의 끝내 무죄

  • 문화일보
  • 입력 2024-04-12 06:44
  • 업데이트 2024-04-12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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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93년 뉴욕의 한 카페에 온 O.J. 심슨과 당시 그의 부인이었던 니콜 브라운 심슨.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아내 살해 혐의로 기소됐지만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전 미국 미식축구 선수 O.J. 심슨이 향년 76세로 사망했다. 해당 재판은 그가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린 스타라는 점과 함께 인종 문제와 가정폭력, 경찰의 위법 행위에 대한 논란을 촉발하며 ‘세기의 재판’으로 불린 바 있다.

프로풋볼 명예의 전당 회장 짐 포터는 11일(현지시간) 심슨이 전날 암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포터 회장에 따르면 심슨의 전립선암 진단은 약 두 달 전에 공개됐으며 그는 이후 항암 치료를 받아왔다. 심슨의 유족들도 이날 SNS에 올린 글에서 “그가 암 투병 끝에 숨졌다”면서 “(사망 당시)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고 알렸다.

심슨은 전처 살해 혐의를 다룬 ‘세기의 재판’으로 전 세계에 잘 알려진 인물이다. 심슨은 1994년 전처 니콜 브라운과 그의 연인 론 골드먼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오랜 재판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사건 자체는 미제다.

194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심슨은 어린 시절 구루병에 걸려 5살 때까지 다리에 보조기기를 착용해야 했다. 하지만 운동 신경이 뛰어났고, 지역의 체육센터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미식축구 스타의 꿈을 키웠다. 1967년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 편입해 미식축구 스타로 인기를 얻었으며 미국프로풋볼(NFL)에서 11시즌을 뛰면서 1973년 러닝백으로는 최초로 2000야드를 넘게 뛰는 등 여러 기록을 남겼다. 그는 친구들에게 “나는 흑인이 아니라 O.J.이다”라고 말하곤 했으며 인종적인 편견과 차별을 딛고 성공한 흑인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994년 6월 백인인 그의 전처 니콜 브라운과 그 연인이 LA에 있는 자택에서 잔인하게 흉기에 찔려 사망한 뒤 며칠 만에 경찰이 심슨을 살인 혐의로 체포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그의 추락이 시작됐다.

앞서 그는 18세의 니콜 브라운을 만나 결혼해 두 자녀를 낳았으나, 두 사람의 관계는 불안정한 것으로 알려졌고 결혼 기간 가정폭력과 학대 신고가 빈번했다. 1992년 브라운이 이혼 소송을 제기하면서 두 사람은 별거에 들어갔고 살인 사건은 2년여 뒤에 발생했다.

배심원 선정부터 평결까지 11개월이 걸린 재판 끝에 심슨은 1995년 10월 무죄 평결을 받았다. 당시 배심원단은 흑인 9명, 백인 2명, 히스패닉 1명으로 구성됐다. 재판 과정에서 사건 현장에 있던 장갑 등 여러 증거가 제출돼 유죄 혐의가 짙었으나 심슨 측은 인종차별주의에 사로잡힌 경찰이 심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증거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95년 형사재판 중 사건 현장의 증거로 제출된 장갑을 끼어보이는 O.J. 심슨.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검찰은 증거로 제출된 장갑을 법정에서 착용해 보라고 심슨에게 요청했고, 심슨은 장갑을 손에 낀 뒤 “너무 작다”고 말했다. 그의 변호사는 “장갑이 맞지 않으면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당시 LA에서는 ‘LA 폭동 사태’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종차별 문제가 특히 예민한 이슈로 다뤄지던 때였다. 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심슨의 재판은 방송으로 중계됐고 이 과정에 많은 미국인은 심슨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봤으나 흑인들 상당수는 심슨이 무죄라는 상반된 시각을 보여 미국 내 인종 갈등의 단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심슨은 이후에도 공식적으로 자신의 결백을 계속 주장했으나, 2007년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가정 하에 살인 사건을 자세히 설명하는 ‘만일 내가 그랬다면: 살인자의 고백’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그는 이 책의 부록 인터뷰에서 “내가 칼을 집었던 것은 기억한다. 그 부분은 기억한다. 솔직히 말해서 그 이후에는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60세이던 지난 2007년 9월 라스베이거스의 호텔·카지노에 들어가 동료 5명과 함께 스포츠 기념품 중개상 2명을 총으로 위협하고 기념품을 빼앗은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이듬해 무장강도죄 등으로 최대 3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9년간 복역하다 2017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출소한 뒤에는 라스베이거스에 정착해 지냈으며 2019년에는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여기에 자신의 근황을 알리는 글과 사진, 동영상 등을 올렸다. 이 계정 팔로워는 87만여 명에 달했다.

임정환 기자
임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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