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공개부터 논의·결정까지… 11차 전력수급계획 투명성 확보 절실[기고]

■ 기고 -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우리나라 전체 발전소와 송·변전 설비에 대한 행정계획이다. 이들 시설을 신설·폐지하는 것은 매번 큰 쟁점이었다. 최근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나날이 커지고 있음에도 국민은 우리나라 전력 정책이 어떻게 구성될지 도무지 알 방법이 없다. 그동안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은 물론, 누가 어떤 의견을 냈는지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다. 수립 과정에서 국회 보고 의무가 법제화되긴 했지만, 회의록과 속기록을 요구하는 국회 요구에 대해 “논의 과정이 공개되면 전문가들이 소신 있게 발언할 수 없다”며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일이 수년째 반복되는 게 현실이다.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계획을 수립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수요나 공급 예측이 잘못되었을 때 평가하거나 책임지는 일도 없다. 이전 전력수급기본계획과 다른 판단이 나오더라도 왜 그렇게 바뀌었는지도 알 길이 없다. 제9차 계획에서는 전기차 확대, 4차 산업혁명 영향에도 불구하고 야간 완속 충전 보편화, 효율 강화, 대형 자가용 발전설비 증가로 전력 수요 증가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제10차 계획에서는 이와 비슷한 이유로 전력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식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처럼 대내외 변수가 많고 이해당사자가 많은 행정계획을 수립할 때는 ‘정답’이라는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충분한 토론과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하다. 최근 경기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에 2050년까지 10GW(신고리 5호기 7.1기 용량)의 전력 수요가 있는데, 내륙 지방인 용인에 그 많은 전력을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LNG 화력발전소 건설 계획이나 부산·울산 지역 핵발전소 건설은 반도체 업계 ‘RE100’ 계획과 충돌한다. 다른 지역에 발전소를 건설하면 대규모 송전선로 건설비용과 수많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송전사업 민간 부문 협력 확대’가 전력산업 민영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문제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문제를 하나씩 꺼내놓고 이해당사자들의 참여를 끌어내는 것이 정부의 본질적인 역할이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정부 관료와 일부 전문가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외견상 ‘발전소와 송·변전 시설 문제’처럼 보이지만, 전력수급계획은 크게는 유엔 기후변화협약부터 전기요금 문제와 노동, 환경문제까지 폭넓게 연관돼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에너지원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여건상 천연가스와 석탄 등 국제 에너지원 가격과 수급 문제도 전력수급기본계획과 맞물려 있기에 더욱 중요하기만 하다.

정부가 하루빨리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을 공개해 주기를 바란다. 형식적인 공청회와 의견 수렴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갖고 토론에 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초안 논의 과정에 사용한 데이터와 근거를 공개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국회는 2년마다 한 번씩 수립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의 투명성과 민주성 확보를 위한 법 제정에 나서야 할 것이다. 선거 때만 잠시 ‘기후위기’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어내는 제22대 국회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