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특유의 ‘끈적한 물가’[뉴스와 시각]

  • 문화일보
  • 입력 2024-05-1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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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진 국제부 차장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던 2022년 6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28년 만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8%대로 급등하자 내놓은 고육책이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2023년까지 금리를 연 4%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한 후 2024년부터 다시 내려 연 2.5% 수준으로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파월 의장의 구상은 빗나갔다. 한 달 후인 같은 해 7월 미국의 6월 CPI는 시장 예상을 뒤엎고 전년 동기 대비 9.1% 급등하면서 1981년(9.6%) 이후 41년 만에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결국, Fed는 네 차례 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통해 기준금리를 당초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연 5.25∼5.5%까지 올려야만 했다. 이때 등장한 용어가 바로 ‘끈적한 물가’(sticky inflation)다. 오른 물가가 천장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것처럼 잘 안 떨어지는 현상을 뜻하는 용어다. 끈적한 물가와의 전쟁이 시작된 지 2년이 흐른 지금 각국의 성적표는 어떨까.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3월 말 10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끈적한 물가 현상이 얼마나 심한지를 보여주는 ‘인플레이션 고착화’ 지수(근원물가 기준)를 공개했다. 1위는 호주, 2위는 영국, 5위는 미국이었다. 한국은 9위, 일본이 10위였다. 순위가 높을수록 끈적한 물가 현상이 심하다는 뜻이다. 상대적으로 한국은 선방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체감이 잘 안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한국 특유의 끈적한 물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을 보면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의 인플레이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미국의 지난 3월 기준 소비자물가와 근원물가 상승률은 각각 3.5%와 3.9%다. 영국은 3.8%, 4.7%였다. 미국과 영국 모두 전체 물가보다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이 높다. 반면, 국내 물가상승률은 지난 4월 기준 2.9%, 근원물가는 2.3%로 근원물가가 낮다. 그만큼 식료품과 에너지 물가가 전체 물가 수준에 비해 높다는 얘기다. 특히, 가중치가 가장 높은 석유류 가격이 안정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식료품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오른 셈이다. 실제로 체감물가에 가까운 생활물가 상승률은 3.5%로, 근원물가보다 1%포인트 넘게 높았다.

이른바 ‘금(金) 사과’ 등 높은 서민 체감물가는 지난달 총선에서 정부·여당에 대한 민심이 돌아선 핵심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발언’은 민심 이반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도 정부는 전체 물가상승률이 하락했다는 것을 앞세워 물가 관리를 잘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가진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장바구니 물가는 몇 백억 원 정도만 투입해 할인 지원을 하고 수입품 할당 관세를 잘 운영하면 잡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기엔 이미 추가 투입한 재정 효과가 미미하다. 올여름엔 많은 비까지 예고돼 있어 장바구니물가 불안이 올해 내내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가안정이 민생안정이라는 각오로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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