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폭력 막을 ‘마음 근육’ 키우기[포럼]

  • 문화일보
  • 입력 2024-05-1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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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데이트폭력 범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명문대 학생, 그것도 의대생이 가해자였기에 관심이 집중된다. 그에 따른 신상털기와 2차 가해도 심각하다. 무엇보다, 범죄의 한 단면만 강조해 명문대생·의대생 모두에게 일반화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겠다.

우리 사회는 데이트폭력 문제가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데도 그 처벌이나 규제는 미비한 실정이다. 반면, 미국·영국과 같은 선진국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데이트폭력 사건의 여성 희생자들의 이름을 딴 법을 제정해 처벌과 피해자 구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1994년 ‘여성폭력방지법(Violence Against Women Act)’을 제정했으며, 2008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17세 여성 케이티가 헤어진 남자 친구의 총격으로 숨진 사건을 계기로 ‘보호명령’ 대상을 연인 관계로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케이티법(Kaity’s Law)’을 만들었다.

영국 또한 2009년 클레어 우드라는 여성이 전과가 있었던 남자 친구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계기로, 2014년부터 ‘가정폭력 정보공개제도’를 요지로 한 ‘클레어법(Clare’s Law)’을 시행 중이다. 이 법에 따르면 심의를 거쳐 데이트 상대의 전과 기록을 조회할 수 있다. 한편, 2016년부터 신체적 폭력이 없는 강요·통제만으로도 최대 5년형이 선고되도록 법을 개정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재범률이 높고 보복·강력 범죄로 이어지기도 하는 데이트폭력 특성상 가정폭력처럼 가해자 ‘접근금지 명령’ 등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지만, 우리는 적절한 법적 근거가 없다. 현행보다 더 강력한 처벌과 구체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번 사건은 가해자가 수능 만점자라는 점에서, 완벽만을 강요받으면서 성장한 것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우등생에게는 한 문제 틀리는 것이 마치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전까지 유용했던 완벽주의적 성향이 대학 입학 후에도 그대로 유지되면서 학업뿐 아니라 대인관계에서 자신의 기준에 조금만 부족하면 그 작은 부분에 집착하고 연연한다. 좌절한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폭력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사건처럼 내면에 축적된 분노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저 모든 내용을 암기해야 하고 한 문제도 실수해서는 안 되는 완벽성만을 강요하고, 오로지 학업에만 매달리게 하는 교육 현실. 문제를 맞히는 기계가 돼 갈수록 정신은 피폐해지고 병들어 간다. 그 과정에서 우울·불안·강박뿐 아니라 공감장애 등이 생길 수 있고, 이후 원만한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부족한 대인관계 기술은 연인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좌절감이 더 커지면서 내재한 폭력이 폭발해 끔찍한 범죄로까지 이어진다.

한 문제 더 맞히는 기계가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배려하는 사회성, 좌절이나 실패에도 견뎌낼 수 있는 심리적 탄력성을 키워야 한다. 이런 ‘마음의 근육’은 급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신체 근육을 다지듯이 어릴 때부터 꾸준히 단련해야 한다. 입시교육이 아니라 사회정서 발달 교육이 우선돼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미래에는 이보다 더한 범죄로 인해 개인은 물론 사회의 혼란이 더 가중될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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