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사랑 끝나면 모험 다녀온 듯… 늘 후유증 남아”

  • 문화일보
  • 입력 2024-05-14 09:22
  • 업데이트 2024-05-1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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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를…’ 펴낸 이병률 시인

“사랑 필요없다 말하는 사람들
이 시를 읽고 마음이 바뀌길”


독특한 감성의 여행 에세이를 통해 독자들을 만나온 이병률 시인이 4년 만에 7번째 시집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시집 출간이 결정되자마자 눈 덮인 삿포로로 떠나 “눈과 사랑을 나누며 지난 사랑의 기억을 남김없이 시로 써냈다”는 이 시인을 서울 중구 문화일보사에서 최근 만났다.

그의 말처럼 시집 속에는 사랑의 다양한 모습이 면면에 가득히 베어 있다. 표제작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부터 사랑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다양한 감정을 그린다. ‘매일매일 햇살이 짧고 당신이 부족했던 적’에서는 사랑에 대한 갈구가, ‘이렇게 어디까지 좋아도 될까 싶어 자격을 떠올렸던 적’에서는 사랑에 대한 망설임이 담겼다.

또한 ‘이 감정은 병이어서 조롱받는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었던 적’에서는 앞뒤 가리지 않는 열렬함,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 앞에서 주책맞게도 배고파한 적’에서는 사랑의 지리멸렬함을 드러낸다.

다만 사랑이 시작되는 설렘이나 절정을 맞은 관계의 애정어린 고백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시인은 “지금은 사랑하는 중이 아니다”라고 밝히며 “사랑은 언제나 끝난 뒤에야 내 안에 거대하게 쌓여있는 감정”이라는 말로 시집의 전반적 정서를 설명했다. “하나의 사랑이 끝나면 엄청난 모험을 다녀온 듯한 느낌인데 쉬운 단어로 하면 후유증”이라고 덧붙였다.

시인이 2017년에 내놓은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문학과지성사)는 35쇄를 찍었고 11만 부 이상 팔리며 꾸준히 사랑받았다. 출판사에 따르면 이번 시집도 출간 이틀 만에 중쇄를 찍은 뒤 2만 부 이상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인에게 독자들로부터 사랑받는 비결을 묻자 이 시인은 “사랑이 필요 없다고 믿는 부족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엉뚱한 대답을 내놨다.

전업 작가가 되기 전 라디오 작가로 일했다는 이 시인은 “사연을 받아보면 당시는 사랑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시대였지만 지금은 자신을 위한 사랑, 일에 대한 사랑 등이 앞서나가는 시대”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담담히 사랑의 흔적을 쫓는 이 시인의 시가 빛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남아있어 제 시를 찾아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스로 ‘부채’라는 호를 붙여 ‘부채 이병률’로 소개한 그는 이번 시집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사람에게 닿는 부채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나에 대한 사랑도 깊어지기 때문에 시를 통해 다른 사람을 사랑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부추기고 싶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시집은 생전 이병률 시인을 각별히 아꼈던 고 허수경 시인의 ‘오롯이 사랑으로 한 권을 써보라’는 제안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시집을 받아 본 허 시인의 예상되는 반응을 묻자 이 시인은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대답했다. “선배가 좋다고 할 것 같아요. 뭐 좀 먹자, 뭐 좀 먹을래? 할 테죠.”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장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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