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과 ‘대왕고래’ 탐사[뉴스와 시각]

  • 문화일보
  • 입력 2024-06-1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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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진 국제부 차장

19세기 미국에서 고래는 중요한 에너지원이었다. 고래에게서 얻은 기름은 가로등과 램프에 쓰이며 도심의 밤을 밝혔다. 산업혁명을 통해 막 등장한 기계의 윤활유로도 활용됐다. 대형 향유고래는 최고의 인기 상품이었다. 한 마리만 잡으면 많은 기름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거친 항해에도 고래를 잡기만 하면 큰돈을 거머쥘 수 있는 포경산업에 수많은 선원이 몰렸다. 우리에겐 ‘백경’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도 고래잡이를 다루고 있다. 젊은 시절 포경선을 탔던 멜빌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남태평양에서 대형 향유고래 모비딕을 잡으려다 조난된 에식스호의 실화를 소설에 실었다.

포경 열풍은 185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지하 유전층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사그라들었다. 당시 유전 굴착자였던 에드윈 드레이크 대령은 그해 8월 27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지하 21m에서 세계 최초 유정(油井)을 발견했다. 존 데이비슨 록펠러가 1870년 설립한 스탠더드석유는 석유산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한때 미국 내 석유시장 점유율이 90%에 육박했던 스탠더드석유는 여론의 반발이 일자 1890년 제정된 ‘셔먼 반(反)독점법’에 따라 34개의 회사로 해체·분할됐다. ‘세븐 시스터즈’라고 불렸던 엑슨모빌, 셰브론 등이 그 후신이다. 우리나라도 산유국의 꿈에 부푼 적이 있었다. 박정희 정부 시절이던 1975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경북 포항 영일만 인근에 시추공 3개를 뚫다가 2공구에서 드럼통 1개 분량의 검은 액체를 발견했다. 하지만 원유가 아닌 정제된 경유로 드러나면서 해프닝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최대 140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과를 발표하면서 산유국의 꿈은 다시 부풀어 오르고 있다. 추정 매장량의 가치는 최대 1조4000억 달러(약 1900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정부는 석유·가스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영일만에서 38∼100㎞ 떨어진 넓은 범위의 유력 후보지에 ‘대왕고래’라는 이름을 붙였다. 가스전이 발견될 가능성이 큰 곳으로 추정되는 7개 해역에 각각 대왕고래를 비롯해 오징어, 명태 등 해양 생물의 이름을 붙였는데, 대왕고래로 명명된 지역이 가장 부존량이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유가 발견되기 이전의 핵심 에너지원이 고래라는 점에서 묘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영일만 일대가 포경산업의 주 무대였다는 점도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신기한 대목이다. 야당에선 정부의 이번 발표를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국면 전환용으로 보고 있다. 석유 탐사 (성공) 확률이 20%인데, 반대로 얘기하면 80%는 아니라는 말이라며 “석유 시추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통상 탐사 시추계획의 성공 확률이 10% 안팎인 상황에서 140억 배럴이 매장돼 있다는 정부 발표가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20%의 확률은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작업이 아닐까. 19세기 거친 바다를 누볐던 포경선이나 미국의 한없이 펼쳐진 황무지에서 유정을 찾아 헤맸던 것과 비교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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