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또’ 정몽진의 오디움[오후여담]

  • 문화일보
  • 입력 2024-06-10 11:38
  • 업데이트 2024-06-1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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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미국 시애틀에는 자선사업가 폴 앨런(1953∼2018)이 설립한 EMP 박물관이 있다. EMP는 ‘음악경험프로젝트(Experience Music Project)’의 약자인데, 어린 시절 앨런이 추앙한 시애틀 출신 팝 가수 지미 헨드릭스의 음반과 기타 등 유품 전시와 함께 다양한 음악을 체험하도록 설계됐다. 2000년 개관 때엔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건물이라는 점에서 큰 화제가 됐다. 최근엔 판타지 예술, 비디오 게임 등 대중문화를 특화한 팝문화 뮤지엄(Museum of Pop Culture·MOPOP)으로 이름을 바꿨다.

EMP 박물관은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 창업한 억만장자 앨런이 남긴 ‘덕후’ 정신의 결정판이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유산을 수집·보존하고 그의 음악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계 최고의 건축가에게 의뢰, 최적화된 박물관을 만든 집념이 놀랄 만하다. 이 덕분에 시애틀은 미국 팝 음악팬들의 순례지가 됐다. 지난 5일 문을 연 서울 서초구의 오디오 전문 박물관 오디움은 EMP 박물관에 비견할 만하다. 오디움을 탄생시킨 정몽진 KCC 회장의 덕후 정신이 ‘시애틀의 메디치’ 앨런과 닮았다.

정 회장은 15세 때 오디오의 세계에 빠져든 후 빈티지 오디오 수집에 나섰고 오디오를 위한 최적화한 건물을 구상, 일본의 저명 건축가 구마 겐고에게 설계를 맡겼다. 40m 길이의 은색 알루미늄 파이프 2만 개가 외벽을 장식한 오디움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건축물이다. 오디움에서는 19세기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와 음악재생기계를 비롯해 웨스턴 일렉트릭 라우드 스피커 등 세계적 오디오 시스템 등과 10만 장의 LP를 만날 수 있다. 100년 전 제작된 빈티지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는 마치 콘서트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한다.

정 회장은 지난 3일 진행한 특별 투어에서 여러 오디오의 다양하고 깊은 음색을 제네시스와 렉서스, 롤스로이스, 페라리 등 명품 자동차에 비유하면서 스스로를 “오또”라고 했다. ‘오디오 또라이’의 준말로 오디오에 빠진 사람, 즉 오디오 덕후를 뜻하는 은어다. 헨드릭스 열혈팬이었던 앨런의 EMP 박물관이 시애틀의 랜드 마크가 됐듯, 소리에 진심인 정 회장의 오디움이 전 세계 오디오 마니아의 성지(聖地)가 될 날도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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