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은 ‘피고인 도피처’ 아니다[포럼]

  • 문화일보
  • 입력 2024-06-1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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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헌법학

형사피고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집요한 재판 지연 전술로 헌법 문제가 중요한 정치 이슈로 등장했다. 그의 목표는 대선 때까지 확정판결을 피해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상 국가라면 그 꿈은 백일몽에 그칠 것이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규정(제84조)은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에게 특권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규정의 ‘소추(訴追)’에 재판의 포함 여부를 두고 논란이 많다. 소추는 수사부터 기소까지를 뜻한다는 것은 사법절차의 기초적인 상식이다. 대통령의 재직 중 형사상의 불소추권을 규정한 나라는 범죄 피고인이 대통령이 되는 것 자체를 상정하지 않는다. 대다수 법치 선진국에서는 형사피고인은 공직선거에 입후보조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 헌법 제정자들도 지금의 반법치적인 정치 상황이 생길 것은 전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범죄 피고인에게 도피처를 마련해 주는 헌법 규정을 만든다는 것은 헌법 원리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범죄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지도자가 국민의 위임을 받아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동안 국정의 안정을 위해서 헌법은 형사상 불소추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란 또는 외환과 같은 반헌법적인 중범죄를 범한 때에는 헌법을 지키기 위해서 소추를 허용한 것이다.

자유민주국가에서 헌법 해석의 일반원칙은 통치권의 기본권 기속성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기본권은 되도록 넓게, 통치기관의 특권과 권한은 가능한 한 좁게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원리에 비춰서도 대통령의 재직 중 형사상 특권 규정은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 평등의 원리에 비춰도 축소해석하는 것이 헌법 이념에 부합한다. 헌법이 평등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해 특수계급의 창설을 금지한 규정은 대통령의 형사상 불소추권 해석에서도 존중해야 한다.

헌법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재판 중인 형사피고인이 대통령이 되는 때에도 재판은 당연히 계속돼야 하고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으면 대통령직을 상실한다. 그래서 헌법도 대통령 당선자가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뽑도록 정했다. 헌법은 대통령의 보궐선거 규정(제68조 2항)에서 궐위 시에는 ‘대통령’으로, 자격 상실 사유에서는 ‘대통령 당선자’라고 표기해서 명백히 구별한다.

헌법 질서의 확립과 법치주의의 실현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길은, 재판 중인 형사피고인이 대통령에 입후보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 열쇠는 사법부가 쥐고 있다. 지금의 위법적인 재판 지연을 끝내고, 이미 공판 절차를 거의 마친 공직선거법과 위증교사 관련 사건부터 하루속히 1심 판결을 해야 한다. 항소심과 대법원도 집중심리를 통해 대선 전에 확정판결을 해야 한다.

법관의 편향적 정치 이념이 재판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법관의 독립을 악용하는 일이다. 만일 재판 지연으로 재판 중인 범죄 피고인이 대통령이 되는 상황이 온다면 헌법해석의 차원을 넘어 사법부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사법부는 존재 이유가 없다.

사법부에 다시 한 번 깊은 성찰과 환골탈태를 촉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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