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하늘에서… 울컥 비감에 젖는 지아비 어루만져 주세요[그립습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4-06-12 09:00
  • 업데이트 2024-06-1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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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 우리 부부가 내 대학은사 조연현(가운데) 선생님을 모시고 진주 진양호에서 함께 찍은 사진.



■ 그립습니다 - 아내 김금자(1942∼2024) <하>

그리움은 그리움의 길을 닦고 있습니다. 그대 떠난 지 한 달 지나 이십삼 일째에 듭니다. 그 사이 몇 편의 시를 써서 그 길을 내면서 넓히고 있어요. 시 ‘거실, 아내와의 보금자리’를 그대 머리맡에 올립니다.

“아내가 가고 / 그 인생도 갔다 // 상봉한주 47평형 아파트 / 아내가 원해서 입주해온 지 32년 / 못 하나 만질 줄 모르는 남편과 함께 / 리모델링까지 하고 / 교수이자 시인인 그 이름이 호주였다 // 빈 자리가 썰렁하다 / TV가 없으면 적막강산, // 오늘은 스승의 날 하루 전 / 대학에서 명예교수의 날이라며 오전 11시 / 컨벤션센터로 나오라 한다 // 나가볼까 나가서 그리운 얼굴들에 / 그리운 한때 만들고 올까 / 그리움은 아내 한 사람으로 가득하고 / 저녁이면 아내를 위한 백일미사 / 기다린다 // 가슴이 있는가 설레이기 시작한다”

주변에서는 이제 그만 슬퍼하라고 당부하네요. 그대와 함께 기도와 신앙으로 생활을 쓸고 닦아온 삶이면 슬픔의 지갑은 닫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말씀은 백번이나 옳은데, 올린 시는 난한 슬픔을 어느 정도 정리한 뒤 쓴 것이어요. 그러나 한밤중이나 새벽녘 잠이 도무지 오지 않는 시간이면 빈자리가 썰렁해요. 혼자 돌아가는 TV로도 감당하기 힘들어지고 생의 규모가 두 사람에서 한 사람으로 좁혀지는 것이 뒤안길이니 사람이 한참 왜소해지려 해요. 그대 병중으로도 부부, 내외, 커플, 부모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과 차지하지 않는 것이 이런 낙차와 불균형이라니, 그대 하늘에서 부디 그 자리를 채워주시길 빌어요. 울컥 불감당의 비감에 젖는 지아비를 어루만져 줘요. 나는 그대가 없이는 지아비가 아니니까요.

오늘은 내가 내분비내과 가는 날이어요. 말하자면 당뇨 체크하기 위해 병원에 갑니다. 그대처럼 채혈실에 2시간 먼저 가서 피를 뽑아요. 거의 매주 가다시피 했던 그대를 생각하면 나는 서너 달에 한 번 가는 꼴이니 비교가 되지 않지요. 그대는 몇 가지 다른 병으로 매주 가는 것이어서 통합하여 횟수를 줄일 수 있으련만 병원은 현실 편리가 매번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밖에서 번호표 받고 순서를 기다렸다가 채혈 간호사 앞에 맨 팔을 내놓지요. 먹는 것도 부실한데 저번에는 오른팔, 이번에는 왼팔 번갈아가며 기인 주삿바늘이 살 속에 찔려 들어갈 때마다 나는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감았지요. 이 순서로도 그대는 충분히 불쌍하였고 바늘이 제자리를 못 찾아 살갗이 찢기거나 하면 “차라리 이 보호자를 찔러라. 보호자가 대신 맞아 주마” 하고 속으로 외쳤지요.

그대는 이제 바늘에 찔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으로 가고 대신 그 지아비가 그 자리에 앉아 아내가 얼마나 아팠을지, 차라리 선종에 대해 생각하며 기도했을 때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그대 하늘에서 수호천사가 된 것일까요. 그 마음으로 북적거리는 채혈실을 환히 내려다보고 있는 것인지요. 창으로 들어오는 바깥 날씨가 착해 보입니다.

진료를 끝내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는데 음악방송에서 그대 애창곡인 패티김의 ‘이별’이 흘러나왔어요.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 냉정한 사람이지만 /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 수는 없을 거야” 나도 슬쩍 따라 불렀습니다.

남편 강희근(시인·경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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