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사랑받는 대통령이 가장 안전하다

  • 문화일보
  • 입력 2022-03-2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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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논설위원

집무실 대립에도 尹 시간 시작
文 지원 거부는 대선 민심 배신
尹도 자성 없으면 리더십 타격

정치는 결론보다 과정서 승패
소통 부족 오만인지 돌아봐야
파격적 개방 청사진 제시 필요


신구(新舊) 권력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둘러싸고 이틀째 충돌했다. 문재인 대통령 측은 ‘임기가 끝나는 마지막 날 밤 12시까지 권한 행사’를 경고했고, 윤석열 당선인 측은 임기가 시작되는 ‘5월 10일 0시부터 청와대 개방’을 다짐했다. 1초의 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힘겨루기 같지만,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다. 뜨는 해를 막을 수 없듯이 48일 후면 윤 당선인의 시간은 시작된다.

정치적 득실을 따져도 윤 당선인은 밑질 게 없다. 문 대통령이 전향적으로 협조했다면 ‘안보 우려’와 ‘일방통행식 결정’의 부담은 오롯이 윤 당선인 몫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오전에 협조 입장을 밝혔다가 반나절 만에 반대로 돌아서면서 몽니 비난을 자초했다. 새 대통령이 당선되는 순간부터 기존 대통령의 제1 과제는 새 정부의 성공적 출발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대선 민심에 대한 배신이다. 그러나 윤 당선인이 자성의 시간을 갖지 않으면 이번 사태는 리더십 훼손과 정권 초기 혼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치 신인 윤석열을 당선시킨 동력은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민심이고, 그 최종 탄착점은 기성 정치권의 퇴출을 통한 새 정치다. 기성 보수 진영에 대한 단죄를 박근혜 탄핵과 4대 선거의 완패로 마무리 지은 민심이 5년 만의 정권교체로 기성 진보 진영을 심판한 것이다.

기성 정치권에서 공약은 나룻배와 같아서 강을 건너면 내버려 두고 가는 것이었다. 문 대통령도 집무실 광화문 이전 공약을 가볍게 포기했다. 문서로 남겨도 소용이 없었다. 1노(盧) 2김(金)의 내각제 각서도 무용지물이었다. 윤 당선인은 당선 이후 주어진 소명에 부응했다. ‘종이 쪼가리는 필요 없다’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공동정부 약속은 인수위원장 임명으로 지켰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결단했고, ‘광화문 시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직접 해명했다. ‘뒤에 숨지 않고 국민에게 설명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결국 이번 사태의 핵심은 집무실 이전 자체가 아니라 소통의 부족이다. 정치는 결론보다 거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승패가 나뉜다. 결단과 독선의 차이가 거기에 있다. 특히, 안보는 위기의 실체적 크기 못지않게 국민이 느끼는 불안감의 크기도 중요하다. 국가원수이자 군 통수권자인 문 대통령과 안보 공백 문제를 협의하는 것은 반드시 거쳐야 할 순서였다. 문 대통령의 반대로 무산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을 설득해 대통령실 이전의 공동 책임자로 엮어내는 것이 정치력이다. 이런 과정을 생략한 채 이전 약속 시행만을 앞세운 것이 자기만족이나 오만이 아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국민통합의 출발점이다. 국민통합은 정치권의 타협이나 소극적 협치로 이뤄지지 않는다. 국민통합은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공정과 균형발전을 추구함으로써 국민 간에 신뢰가 구축될 때 가능하다.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소통을 해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의 구조와 그 공간이 연출하는 장벽이 소통에 치명적이라는 것에는 이미 이견이 없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윤 당선인의 함축적 표현보다 친절하고 반복적인 설득이 필요했다.

향후 행보는 소통 강화에 머물러선 안 된다. 국민 불안 해소를 넘어 기대와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창의적이고 담대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새로운 공간에 걸맞은 회의 방식 등 대통령실 운영 혁신은 기본이다. 대통령이 늘 국민 바로 옆에 있는 존재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파격적 조치가 필요하다. 공관과 집무실을 오가는 출퇴근 시간을 시민에게 불편을 주는 통제의 시간이 아니라, 시민과 대통령의 만남의 시간으로 바꿔 윤석열 정부 브랜드이자 관광상품으로 만들 수도 있다. 대통령과 함께 식사한 사람과 식단, 소요 경비를 낱낱이 밝히겠다는 약속을 할 수도 있다. 서구 선진국은 물론 일본 총리도 시행하고 있는 일이다. 현재의 청와대처럼 특활비나 의전비를 공개하라는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는 식의 인식을 갖는다면, 집무실을 광장 한가운데로 옮기더라도 의미가 없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대통령이 가장 안전하고, 그런 대통령을 가진 나라의 안보에는 공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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