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SF 상상 현실됐지만… 인간 한계는 여전, 오만 버려야”[나윤석 기자의 고전을 묻다]

  • 문화일보
  • 입력 2022-07-19 09:11
  • 업데이트 2022-12-2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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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윤석 기자의 고전을 묻다
- 정보라 작가가 꼽은 ‘우주 순양함 무적호’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정보라 작가가 지난 15일 경기 고양시 그린북에이전시 사무실에서 폴란드 과학소설(SF) 거장 스타니스와프 렘의 ‘우주 순양함 무적호’ 폴란드어판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윤성호 기자


‘고전을 묻다’는 다양한 분야 전문가와 한 권의 고전을 놓고 대화하는 시리즈다. 서양 고전학자인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는 “고전이란 정답이 아닌 질문을 던지는 텍스트”라며 “답은 틀릴 수 있으나 질문은 틀릴 수 없다”고 말했다. 고전에 담긴 질문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가꾸고, 우리를 어제보다 성숙한 존재로 변화시키기를. 시리즈 첫 손님은 소설집 ‘저주토끼’로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다.


폴란드 SF거장 스타니스와프 렘
1964년 낸 접촉 3부작 완결편
AI·가상 현실·유전자 복제…
상상력으로 그린 우주 탐사기

“인간, 낯선 곳선 한없이 나약”
오늘날 우리에게도 질문 던져

소설 속 소련의 과학만능주의
공산주의식 체제 경쟁 꼬집어



“스타니스와프 렘 작품은 다 좋습니다. 그중에서도 ‘재미’는 ‘우주 순양함 무적호’가 최고입니다!”

정보라 작가는 최고의 고전을 골라달라는 메일에 이런 답장을 보내왔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민음사)는 폴란드 과학소설(SF) 거장 스타니스와프 렘(1921∼2006)이 1964년 발표한 장편으로 ‘에덴’과 ‘솔라리스’를 잇는 접촉 3부작 완결편이다. 우주선 무적호가 레기스 3 행성을 탐사하다 실종된 콘도르호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다혈질의 선장 호르파흐와 언젠가 직접 우주선을 지휘하는 야심을 가진 2인자 로한은 ‘무적호’라는 이름처럼 자신만만하게 수색에 나서지만 강력한 미지의 세력을 맞아 대원들을 차례로 잃는다.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슬라브 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 작가는 현대문학 단편선 ‘스타니스와프 렘’을 번역한 이력도 있다. 지난 15일 오후 경기 고양시 그린북에이전시 사무실에서 정 작가와 이 고전의 정체를 파헤쳤다.

―왜 이 소설을 추천했나.

“발표 후 60년가량 흘렀지만, 오늘날 한층 울림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소설은 묻는다. ‘너희는 너희가 제일 힘 세고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하지? 그러다 낯선 행성에서 낯선 존재한테 잡아먹히면 어쩌려고?’ 렘의 시대보다 발전한 과학기술 수준만큼 인간이 오만해질 가능성도 커졌다. 소설 속 행성은 인간에게 적대적인 곳이다. 인간의 방식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공간이지만, 인간은 거기서도 인간임을 벗어날 수 없다. 그게 인간의 한계다. 끝이 안 보이는 팬데믹을 봐라. 지구조차 통제를 못 하는데 함부로 나대면 박살 난다. 기술 개발을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예측하며 인간을 보호한다는 원칙을 세우자는 것이다. ‘안전제일’ ‘조심조심 코리아’ 같은 구호라도 외칠 판이다. (웃음)”

―우리 시대 SF 문학이 갖는 의미는.

“렘은 SF 문학을 ‘인식의 지평을 여는 실험실’이라고 표현했다. 렘이 20세기 중반 소재로 활용한 인공지능(AI)과 가상현실(VR), 유전자 복제 등은 이미 현실이 됐다. 가상의 ‘실험실’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SF 문학은 도전적인 상상력으로 사회 변화를 읽어내기에 태생이 ‘진보적’이다.”

정 작가는 ‘우주 순양함 무적호’가 미지의 세계와 인간의 조우라는 원형적 서사를 담고 있지만, 1960년대 폴란드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면 훨씬 풍부한 텍스트로 읽을 수 있다고 했다. 폴란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에 의해 강제로 공산화됐다. 자주국 권리를 잃은 채 소련의 방침을 따르는 위성국가로 전락한 것이다. 그는 “20세기 초중반 한국인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했듯, 폴란드 국민은 소련식 공산주의에 엄청난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소설에 공산주의 비판이 숨어 있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1957년 인류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린 소련은 미국과의 우주개발 경쟁에서 한발 앞서 나갔다. 그들은 이 같은 기술력 우위를 공산주의의 위대함을 선전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소설에 담긴 과학기술 만능주의 비판은 ‘앞뒤 재지 않는’ 공산주의식 체제 경쟁을 우회적으로 꼬집은 것이다.”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결함을 지닌 나약한 인물이다. 선장은 후배에게 작전 수행을 떠넘기고, 로한은 연이은 패배에 의욕을 잃어간다.

“당대 공산권의 예술 사조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었다. 이 사조에 충실한 문학은 늘 동료를 위해 희생하고, 생산력을 ‘초과 달성’하는 영웅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우주 순양함 무적호’ 인물들은 전형적 영웅상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엘리트 계층인 우주 비행사를 반(反)영웅으로 묘사하는 건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향한 도발이자 야유다.”

―반영웅들의 실패담을 지배하는 건 이성의 한계에 대한 절망과 좌절이다.

“렘이 폴란드의 ‘콜럼버스 세대’라는 점과 관련 있을 것이다. 콜럼버스 세대는 1918∼1925년에 태어나 2차 대전 발발 당시 성년을 맞은 이들이다. 윗세대가 독일군에게 잡혀가거나 깡그리 죽은 탓에 어른이 됨과 동시에 콜럼버스처럼 삶의 항로를 스스로 찾아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경험으로는 사물의 본질을 결코 인식할 수 없다는 ‘불가지론’이 콜럼버스 세대의 핵심 정서다.”

최후 작전에 투입된 로한은 적(敵)의 가공할 위력만 확인한 채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다. 무적호에 남은 선장과 다른 대원의 생사는 알 수 없다. 이야기는 홀로 덩그러니 놓인 무적호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는 로한을 비추며 끝난다. 일찌감치 영웅의 위엄을 잃은 주인공을 살려둔 건 작가가 남긴 마지막 희망일까. 이 질문에 정 작가는 색다른 해석을 들려줬다. “모험소설로 읽으면 ‘개고생’한 주인공이 ‘어쨌든’ 생존한 결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품 메시지를 복기하면 오히려 냉정한 엔딩일 수 있다. ‘안’이 아니라 ‘바깥’에서 무적호를 바라보는 인물, 무적호가 무적이 아님을 증언해줄 외부 시선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이렇게 읽으면 희망의 엔딩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정신 차리라’고 촉구하는 엔딩이 된다.”

―렘의 작품세계가 ‘정보라 월드’에 끼친 영향은.

“위대한 작가와 ‘어쩌다 유명해진’ 나를 비교하지 말아달라. 나는 기쁘지만 렘에겐 모욕이다. (웃음)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비극적인 주인공 묘사가 깊이 가슴에 남아 있다. 다만 영향받지 않은 지점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가톨릭 환경에서 성장한 렘은 작품을 통해 신에게 곧잘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종교가 없는 나는 인간의 문제를 초월적인 절대자에 의탁하지 않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가끔 ‘저주’나 ‘귀신’ 같은 황당한 장치를 심어놓지만 저주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귀신도 죽었는데 이승에서 얼쩡거리는 사람 아닌가.”
‘최고의 고전’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정보라가 생각하는 고전의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는 김헌 교수와 비슷한 말을 했다. 대답하는 작품이 아닌 물어보는 작품이 고전으로 살아남는다고. 시대가 바뀌면 달라질 수밖에 없는 대답과 달리 질문은 시공을 건너뛴다고. 정보라의 작품이 훗날 고전의 반열에 오를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으며 적어도 정보라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질문하는 일을 멈추진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저주토끼’는 인간 세상의 쓸쓸한 부조리를, ‘여자들의 왕’은 남성들의 어리석음을 날카로운 물음으로 폭로한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호러로, 판타지로, SF로 장르를 넘나들어도 그가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사람을 향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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