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 대응에 한국 ‘배터리 역량’ 연계… 미국기업 활용해 백악관 설득해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전기자동차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한국의 미래 자동차산업을 위해서는 미국 전기차시장 내 경쟁력 유지가 중요하다”며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대응에 정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규 기자

■ 현안인터뷰 - 김필수 한국전기자동차협회장

국산 전기차 美판매 주춤하면
장기적으로 車산업 전체 위기
정부·학계, 부당함 계속 전해야

바이든, 韓 배터리 기술에 욕심
GM·포드, 합작공장 설립 요청
우리도 美에 맞대응 역량 있어

美 현지공장 설립·생산 신속히
내연차 라인도 전기차 전환을
규제·경직된 노동법 해결과제

최근 자동차·배터리 업계의 최대 현안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다. 지난 8월 16일(현지시간) 발효된 IRA는 미국·캐나다·멕시코 등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지역에서 최종 조립한 전기자동차에 대해서만 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0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업체들은 그만큼 전기차 가격이 오르게 된다. 특히 아이오닉5·EV6 등 전기차를 모두 한국에서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는 현대자동차그룹은 글로벌 완성차업체들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가 연이어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을 만나 IRA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는 등 한·미 동맹관계의 현안으로까지 부상했다.

한국전기자동차협회장을 맡은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IRA 발효 이후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이다. 김 교수에게 자문하는 정부 및 학계, 언론 등의 전화가 하루에만 100통 이상이다. 김 교수는 “IRA는 자유무역협정(FTA) 기조를 흔드는 자국 우선주의 법안”이라며 “법안이 유지되면 현대차그룹의 미국 전기차시장 입지가 크게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로비를 통해 한국 완성차업체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IRA 적용 시점을 미뤄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IRA 법안이 발효된 배경은 무엇인지.

“탈(脫)중국에서 비롯됐다. 중국산 원자재와 부품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법안이 시행됐다. IRA 법안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추진해온 ‘더 나은 재건’(BBB) 법안을 축소·수정한 것이다. 미국 내 노조가 있는 기업의 전기차에 세액공제를 추가해 주는 내용이 담겼다. 미국 내 일본 토요타공장이 여러 개인데, 토요타는 노조가 없기 때문에 이 법안이 통과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노조가 없는 테슬라와 함께 공동 대응해서 관련 조항을 뺐다. 캐나다 정부도 로비를 통해 북미산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이 유탄을 맞은 것이다.”

―IRA 타격이 정말로 심각한가.

“미국은 떠오르는 전기차시장으로 규모가 막대하다. 현대차그룹이 현재 미국 전기차시장에서 테슬라에 이어 2위까지 올라갔는데 대당 보조금 1000만 원이면 시장 점유율이 좌우될 수 있는 막대한 금액이다. 지금 현대차그룹이 생산하는 아이오닉5, EV6는 없어서 못 팔 정도다. 하지만 IRA 발효 이후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전기차 계약률이 30% 정도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동차산업은 ‘유지’가 생명이다. 주춤하면 소비자가 금세 떠날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현대차그룹이 주춤하면 국내 부품업체 상황도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장기적으로 국내 자동차산업 전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현대차그룹 등 민간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자칫 미국 정부에 밉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학계에서 IRA의 부당함에 관해 얘기해야 한다. 다만 미국이 오는 11월 8일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완전히 바뀌기는 어렵고 적용 시점이 유예될 가능성은 있다. 한국 등 미국과 FTA를 맺은 모든 국가에 예외를 적용해주는 것이 보편타당하다. IRA 법안이 상원을 통과할 때 50 대 50이었고, 해리스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법안이 통과됐다. 미국 내 IRA 반대파가 많다는 얘기다.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는 움직임만으로도 충분하다. WTO 제소의 실제 효과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 조지아주 라파엘 워녹 상원의원(민주당)이 최근 IRA 적용 시점을 2026년부터로 하는 내용의 법안을 미국 상원에 제출했다. 11월 중간선거 전 통과 가능성을 따져본다면.

“의미는 있지만, 실제 통과 가능성은 크지 않게 본다. 중간선거로 상·하원의원이 교체될 가능성이 있고 법안 처리에만 상당한 기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중간선거 전 IRA 적용 시점이 유예되는 등 한국에 유리한 조치가 나오긴 어렵다고 본다. 중간선거 이후 대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배터리 분야에 강점이 있다. 배터리와 연계한 IRA 전략은 없을까.

“한국 업체들의 배터리 역량을 활용해도 좋다. 바이든 대통령이 욕심낸 것이 한국의 배터리 기술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칼자루를 쥐고 휘두를 필요가 있다. 제너럴모터스와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한국 배터리업체에 합작공장을 만들자고 요청하고 있다. 우리가 직접 싸우기보다 미국 기업을 활용해 미국 정부를 설득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IRA는 한국 배터리 업계에도 부담이다. IRA는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맺은 국가에서 주요 배터리 광물을 추출 또는 처리할 때만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내년에 이 비율은 40% 이상으로 출발하고, 매년 10%포인트씩 늘어난다.”

―정부 늑장대응 논란도 나오는데.

“바이든 대통령이 IRA 법안에 서명하자마자 내가 깜짝 놀라서 칼럼까지 썼다. 그런데도 정부는 열흘이 지나도 움직임이 없었다. 이번 IRA 법안은 서명 즉시 발효됐다. 통상 법안 발효는 유예기간을 두는데 서명 즉시 발효되는 것은 비상시에나 하는 것이다. 한국은 일본, 캐나다 등과 달리 정식 로비스트가 없다. 이게 작동을 하지 않으니까 사달이 발생한 것이다. 문제는 자국 우선주의가 유럽연합(EU) 등으로 퍼져 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앞으로 통상규범이 아닌 자국 우선주의에 따른 제2, 제3의 IRA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핵심국가 내부 상황에 관심을 두고 로비 기능을 가동해 이런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현대차그룹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미국 내 전기차를 빨리 생산해야 한다.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 공장의 착공 시점을 내년 상반기에서 올해로 앞당겨 2024년 내 가동해야 한다. 기존에 내연기관차를 만들던 앨라배마 공장라인을 전기차로 바꿀 수도 있다. 이건 3~4개월 정도면 가능하다. 현대차그룹 기술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 문제는 현대차 노조다. 생산 계획을 변경할 때 단체협약에 따라 노조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조도 열린 자세를 보여야 한다. 현지 공장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우리도 중국, 미국처럼 전기차 보조금을 차별적으로 줘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과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는 자동차 규모는 비교조차 안 된다. 오히려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자국 보호주의 기조가 강화되면 장기적으로는 손해다. 다만, 차종별 구분을 두는 방법은 고려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조금을 받는 친환경버스 대상에서 수소 버스 비중을 높이는 것이다. 현재 수소 버스 양산모델은 우리나라만 만들 수 있다. 또 지원금 조건에 전기인프라는 한국 것을 쓰도록 규정하면 중국 전기차업체들의 한국 전기차 인프라 시장 재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

―국내 전기차 전환 정책, 잘 가고 있나.

“전기차 대중화는 가능하지만, 내연기관 종식은 쉽지 않다. 특히 전기차 보급에만 혈안이 된 전기차 전환 정책은 문제다. 부품산업, 인재양성, 인프라 육성 등이 속도를 맞춰 같이 전환돼야 연착륙할 수 있다. 자칫 일자리 감소와 자동차산업 공동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국에 자동차 정비업소가 4만5000곳 있는데 현대차그룹 직영 300곳을 제외하면 전기차 수리에 손을 못 댄다. 그래서 정비연합회 관계자들이 내게 10만 명을 교육해 달라는 부탁까지 해왔다. 전기차 전환을 위해선 예산편성도 필요하고, 인스트럭터도 양성해야 한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은 언제까지 갈 것으로 전망하나.

“향후 2~3년은 더 갈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직후 가전·모바일 분야가 호조를 보이면서 반도체가 이쪽으로 집중됐는데, 차량용 반도체 수익률이 높아지면서 회복되는 추세다. 문제는 재고를 다 썼다는 점이다. 특히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반도체가 많이 들어간다. 내연기관차에 300개의 반도체가 쓰이지만, 전기차는 600개, 자율주행 전기차는 900~1000개의 반도체가 필요하다. 변화 속도는 빠른데 재고가 부족하다 보니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이 장기화하고 있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가 하이테크로 진화하면서 각국의 전략물자로 위상이 올라가고 있다. 자율주행차 단계는 첨단기술의 총합이다. 지난해 말 중국의 수출 규제에서 비롯된 요소수 파동을 고려하더라도 정부에서 차량용 반도체를 전략물자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국 자동차산업은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에서 변화를 선도하는 ‘퍼스트무버’(선도자)로 체질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다. 모빌리티 산업은 반도체와 함께 국내 제조업을 지탱하는 양대 축이다. 더욱이 로봇 모빌리티로도 확산하기 때문에 국내에서 사업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우선 규제 일변도의 포지티브 정책을 바꿔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 정부는 신기술을 개발해 가져가면 외국에서 입증해 오라고 한다. 새로운 기술이나 분야를 개척해도 관련 법을 해외에서 만들기 전까지 안 만들어 사업 추진이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게 봤다. 정부도 ‘퍼스트무버’ 정신을 가져야 한다. 또 하나는 경직된 노동법을 바꿔야 한다. 가장 시급한 부분이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을 매년 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는 임단협을 3~5년마다 한 번씩 한다. 최소 2~3년에 한 번 하도록 바뀌어야 한다. 노조는 마음대로 파업하는데 대체인력 투입을 불법으로 규정한 현행법도 문제가 많다. 노조원 평생 기아차 30% 할인 혜택을 고집하는 기아 노조도 시대 변화를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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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회장은…

전기공학 전공하며 車 연구… 교수 된 뒤에도 10년간 작업복만 입고 기술개발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자동차 업계에서 정평이 난 ‘노력파’다.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김 교수는 석사 과정을 밟던 1984년 자동차에 대한 애정 하나로 서울 종로에 위치한 학원을 따로 다니며 내연기관을 공부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시초가 된 포니 엔진 분해조립에 몰두하며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도전했다. 그 결과 그는 지금 국내에선 흔치 않은 전기공학 전공 출신 자동차 권위자가 됐다.

“최근에는 전공 분야가 다양해졌지만 제가 내연기관을 공부하던 당시에는 자동차 전문가 대부분이 기계공학과 출신이었습니다. 자동차 업계가 전동화 전환기를 맞으면서 이제는 제가 했던 공부들이 더 가치를 인정받게 됐죠.”

김 교수의 열정은 1996년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가 된 후 더 불타올랐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약 10년 동안 작업복만 입고 생활하며 자동차 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김 교수는 신기술을 개발하면 샘플을 만들어 자신의 승용차에 적용했다. 학생들은 이 모습을 보면서 그의 차를 ‘키트’라고 불렀다. 키트는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 ‘전격 Z작전’에 등장한 미래 자동차다. 김 교수는 “당시 제 차가 흰색 캐피탈이었는데 비가 오는 양에 따라 속도가 변하는 ‘자동 와이퍼’ 등을 장착해 테스트를 하면 학생들이 깜짝 놀라곤 했다”며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작업복만 입고 지냈지만 그 정도로 차와 연구가 좋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김 교수는 최근에는 후진 양성에 가장 힘을 쏟고 있다고 했다.

“이제는 자동차 업계도 전기차 시대로 넘어가며 미래지향적인 큰 그림을 그리는 게 중요해졌어요. 이때 핵심은 교육이죠. 융·복합적 능력을 갖춘 교육자를 키우기 위한 정부 지원도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1960년 서울 출생 △동국대 전기공학과 △충청대 전기과 교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 △서울오토살롱 조직위원장 △F1 코리아그랑프리 정책자문위원 △한국이륜차운전자협회 회장 △한국퍼스널모빌리티(PM)산업협회 회장 △한국자동차튜닝산업협회 회장 △한국수출중고차협회 회장 △미래전기차산업기술연구조합 회장 △한국전기자동차협회 회장

황혜진·이근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