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도 필연성도 없는 巨野 민주당의 장외투쟁… 탄착점은 정권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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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우의 Deep Read - 민주당 대국민서명운동

장외투쟁은 권위주의 시절 소수당의 최후 수단… 절대의석 가진 정당의 원외투쟁은 ‘다수의 횡포’
정치적 목적 관철하려 국회 무력화…‘이재명 방탄 - 尹정권 퇴진’ 지지자 동원 노린 ‘예열적’ 공간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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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더불어민주당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위한 장외 대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국회 다수당이라는 지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장외투쟁은 명분과 조건을 갖추지 못한 ‘다수의 횡포’에 가깝다.

다수당의 장외투쟁은 대의기구를 무력화시킨다는 점에서 비제도적 정치 행위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서명운동’은 언제라도 ‘이재명 지키기 방탄 운동’을 위한 지지자 동원의 방책으로 쓰일 가능성도 있다. 장외투쟁의 탄착점이 윤석열 정권 퇴진에 있다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의사결정의 비용

제임스 뷰캐넌과 고든 털럭은 저서 ‘국민 합의의 분석’에서 집단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타협을 위한 시간과 노력이라는 거래비용(transaction cost)과 최종 의사결정에 반대하는 집단이 불만족을 감수해야 할 순응비용(conformity cost)이 발생한다고 파악했다.

이를 의회의 의사결정 방식인 다수제(다수결)와 합의제에 대입해 보자. 다수제적 결정 방식을 택한다면 신속한 결정이 가능하므로 거래비용은 작지만 소수당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기 때문에 순응비용은 커진다. 반면 합의제 방식을 택한다면 소수당을 설득·양보하는 데에 따른 거래비용은 커지나 소수당에 일부 만족을 줌으로써 상대적으로 순응비용은 작아진다.

장외투쟁은 상대 정당이 의사결정 방식으로 다수제를 선택한 상황에서 최종 결정에 반대하는 집단의 순응비용이 너무 커 결과를 수용할 수 없는 경우 발생한다. 권위주의 시절 다수 여당이 인권을 침해하는 법률을 통과시키려 할 때 소수 야당은 국회에서 반대 투표만으로 법률 통과를 저지할 수 없으므로 국회를 포기하고 길거리로 나서 국민에 직접 호소하는 전략을 택하곤 했다.

권위주의 정부에서는 여당이 과반 의석이 부족할 경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소속과 야당 의원까지 빼내기를 해 의회를 지배하는 전략을 세웠다. 당시 여야 간에 신뢰 수준이 매우 낮았고 협치 가능성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여당이 일방적 권력을 행사하는 국회에서 좌절한 야당은 장외투쟁을 저항의 주요 수단으로 삼았다.

◇장외투쟁의 명분

정당의 장외투쟁엔 3가지 명분과 조건이 있다. 첫째, 국회 운영의 두 가지 원칙 중 합의제 원칙이 경시되고 다수제 원칙만 강요되는 경우. 여당인 다수당이 의석수를 무기로 설득과 타협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소수당은 협치의 장으로서 국회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

둘째, 국민 절대다수 여론이 소수당의 주장에 호의적일 경우. 비록 소수당이더라도 제기하는 사안에 대한 국민 지지가 대단히 높을 때 소수당이 직접 국민에 호소함으로써 우호적 여론을 강화할 수 있고 다수당을 압박할 수도 있다. 셋째는 대통령의 지지도가 낮을 때다.

이 같은 장외투쟁 명분과 조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첫 번째다. 권위주의 집권세력 통치 아래에서 의회 내 소수 야당의 의견이 여당에 의한 ‘다수의 횡포’로 번번이 좌절돼 국회가 대의기구로서의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할 때 비로소 장외투쟁의 필연성이 인정된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조건을 갖췄더라도 야당이 다수당이라면 국회 내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맞는다.

민주당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관철을 위해 벌이는 범국민서명운동은 그런 면에서 장외투쟁의 필연성을 갖추지 않았다. 무엇보다 의석 56.5%를 차지하는 여소야대의 구조적 조건은 민주당이 장외투쟁에 나서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전반기 국회에서도 민주당은 ‘다수의 횡포’를 거듭했다. 소수 여당과 적극적인 대화와 타협도 해보지 않고 장외투쟁에 나서는 건 호소력이 없다. 여당이 국정조사를 완전히 거부한 게 아니라 경찰 조사 결과를 보고 결정하자는 유보 입장이라는 면에서 여야 간 타협 여지는 있다.

◇다수당이 왜

각종 여론조사는 이태원 참사 정부 대응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70% 안팎에 달한다. 다른 야당들도 국정조사를 하자는 입장이다. 국회에서 다수결의 힘을 발휘해서라도 국정조사를 밀어붙일 힘이 형성된 셈이다.

야당은 국회에서 유리한 국면과 우호적 여론을 기반으로 국회 절차에 따라 국정조사를 관철하면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겠지만 여론과 야당의 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민주당이 야권의 단결을 확인하고 확보한다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 하더라도 국회에서 재의결할 수 있다. 대통령이 재의결 가능성이 높은 사안에 대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거부권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국회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우호적 조건이 충분히 갖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선택한 것은 국정조사나 특검을 관철하겠다는 목적 이외에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낳는다.

이와 관련, 이 대표와 민주당 내 일각에서는 장외투쟁을 최후의 수단이 아닌 최선의 수단으로 보고 믿고 실행하려는 인식과 흐름이 있다. 굳이 국민서명이라는 장외투쟁 방식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통과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 장외투쟁이 가져올 ‘부가적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장외투쟁의 탄착점

민주당 입장에서 대국민 서명운동은 ‘이슈 지지자’들을 규합해 ‘정당 지지자’들로 확대하는 기회가 된다. 장외투쟁은 또 구체적 행동목표를 제시해 내부 단결을 도모하고 이재명 대표 주도의 리더십을 과시할 기회가 된다.

민주당은 장외투쟁이 지지자 동원의 ‘예열적’ 기회 공간을 열어줄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가 극심한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거대 야당이 대국민 서명운동이라는 정치적 이벤트를 통해 일단 지지자 동원의 분위기를 조성한 후 이를 ‘이재명 지키기’를 위한 운동으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 나아가 민주당은 거대 야당의 힘을 이용해 장외투쟁을 언제든 ‘정권 퇴진’ 운동으로 바꿔나가기 위한 지지자 동원의 방책으로 삼을 가능성도 있다.

정당의 원외투쟁은 대의기구를 무력화시킨다는 점에서 비제도적 정치 행위다. 과거 장외투쟁이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고 ‘다수의 횡포’가 국회를 지배했던 권위주의 시절 때였다.

국가기구가 절차와 제도에 따라 기능할 때 국민의 신뢰를 얻는다는 관점에서라도 장외투쟁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수당인 민주당의 장외투쟁은 순수성을 인정받기도 어렵고, ‘이재명 방탄용’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도 어렵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 용어 설명

‘국민 합의의 분석’은 뷰캐넌과 털럭의 책. 다수결의 원칙을 넘어 대안 의사결정 규칙들의 문제를 분석한 ‘공공선택론’의 고전. ‘교환으로서의 정치활동’의 개념화를 시도했다고 평가됨.

‘다수의 횡포(폭정)’는 다수당이 힘을 앞세워 다수제(결) 논리로 소수당을 배제하며 전횡하는 것. 알렉시 토크빌이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섹션 타이틀로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짐.

■ 세줄 요약

의사결정의 비용 :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거대야당 민주당의 장외투쟁은 명분과 조건, 필연성을 갖추지 못한 ‘다수의 횡포’임. 정치적 ‘거래비용’은 줄였겠지만 반대자들의 불만족을 증가시킴으로써 ‘순응비용’을 늘림.

장외투쟁의 명분 : 장외투쟁은 대개 의회 다수당인 여당이 의석수를 무기로 전횡해 협치가 불가능할 때 야당이 벌이는 어찌할 수 없는 선택임. 특히 권위주의 시절 그 외의 다른 방법이 없을 때 택했던 최후의 수단이었음.

장외투쟁의 탄착점 : 원외투쟁은 대의기구를 무력화한다는 점에서 비제도적 정치 행위. 민주당은 장외투쟁을 ‘이재명 방탄’, 나아가 ‘정권 퇴진’을 위한 지지자 동원의 ‘예열적’ 기회 공간으로 삼을 구상인 것으로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