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끼리’ 깊은 공감이 혐오 불러… ‘타인 향한’ 공감의 반경 넓혀야”[나윤석 기자의 고전을 묻다]

  • 문화일보
  • 입력 2022-11-15 09:06
  • 업데이트 2022-12-2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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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장대익 가천대 창업대학장(석좌교수)이 지난 8일 경기 성남 가천대 연구실에서 피터 싱어의 ‘사회생물학과 윤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 나윤석 기자의 고전을 묻다 - 장대익 가천대 창업대학장이 꼽은 ‘사회생물학과 윤리’

인간 · 동물 모두 이타성 갖지만
이성 통한 ‘공감의 확장’서 차이

내집단 몰두 ‘선택적 과잉 공감’
가장 원시적 형태로 경계해야

정서 아닌 이성에 바탕한 공감
폭력 · 혐오 시대 끝낼 단초될 것


올해 출판계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다정함’이다. 다정한 친화력을 진화의 원동력으로 지목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가 9만 부 이상 팔리면서 ‘타인이라는 가능성’ ‘다정함의 과학’ 등 공감·타인·연대를 키워드로 삼은 책들이 쏟아졌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9월부터 가천대 창업대학장(석좌교수)을 맡고 있는 장대익 교수는 다정함에 관한 이 모든 책에 영감을 준 고전이 피터 싱어의 ‘사회생물학과 윤리’(연암서가)라고 말했다. ‘동물 해방’으로 유명한 윤리학자인 싱어는 1981년 출간한 이 책에서 도덕은 ‘문화’가 아닌 ‘생물학’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도덕이 사회적 협약이나 관습으로부터 굳어졌다는 통념을 뒤집으며 다른 영장류와 공유하는 진화적 본성임을 밝힌 것이다. 진화심리학자인 장 교수를 지난 8일 경기 성남 가천대 연구실에서 만나 이타성의 근원과 ‘혐오의 시대’를 건너기 위해 필요한 공감의 유형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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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생물학과 윤리학 역사에서 지니는 의미는.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은 생물학자들이 ‘생물학’을 넘어 ‘인간의 본성’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시기다. 에드워드 윌슨은 1975년 ‘사회생물학’을 통해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관념에 도전했고, 리처드 도킨스는 1976년 ‘이기적 유전자’에서 모든 생명체가 유전자의 운반자에 불과하다는 파격적 주장을 내놓았다. 당시 인문학자들은 ‘인간을 모르는 생물학자의 이론’이라고 무시했으나 1급 윤리학자인 싱어가 사회생물학적 성과를 수용해 인간의 도덕성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능이 발달한 영장류 연구를 통해 인간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사회생물학과 윤리’는 생물학과 윤리학, 과학과 철학이 만난 출발점과 같은 책이다.”

―싱어는 윌슨의 이론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계승했나.

“윌슨의 ‘사회생물학’에서 인간의 도덕성을 서술한 대목은 마지막 챕터뿐이다. 앞부분은 모두 개미나 침팬지의 행동 특성을 관찰한 결과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면서도 생물학자로서 인간을 말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듯하다. 싱어는 엄청난 논란을 낳은 이 주장을 밀고 나가 인간의 이타성과 도덕이 동물과 공유하는 진화의 결과라는 점을 논증했다. 그는 이를 위해 ‘상호호혜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상호호혜성은 내게 도움을 준 생명체를 기억했다 그 도움에 걸맞은 보답을 하는 본성이다. ‘도움을 준 존재’와 ‘도움을 주지 않은 존재’를 구분하는 능력은 생각의 힘이 아닌 본능에서 비롯된다. 내가 보여준 이타성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을 때 ‘화’를 낸 생명체가 인간의 조상이다. ‘기브 앤드 테이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생명체는 생존에 불리했기에 살아남지 못했다. 상호호혜성은 도덕관념의 진화적 기원이자 자연선택에 영향을 미친 결정적 요인인 셈이다.”

―윌슨과 차별화된 싱어만의 사유는 무엇인가.

“인간과 동물의 공통점에 집중한 윌슨과 달리 싱어는 차이를 낳은 ‘이성의 진화’에 주목했다. 이른바 ‘에스컬레이터론(論)’은 이성에 대한 싱어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진화의 어느 시점에 두뇌의 발달로 획득한 ‘이성적 사고’는 일단 걸음을 옮겨 놓으면 어디까지 올라갈지 모르는 에스컬레이터처럼 무한히 확장할 수 있다. ‘사회생물학과 윤리’의 원제인 ‘The Expanding Circle’ 역시 에스컬레이터론을 요약한 제목이다. 동물의 상호호혜는 혈연이나 가까운 소집단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하지만 인간이 공감을 표하는 대상은 ‘확장하는 원’처럼 가족과 이웃에서 민족과 인류, 민족과 인류에서 동물까지 넓어져야 한다는 게 싱어의 주장이다. 그는 ‘쾌고 감수성’, 즉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존재는 모두 공감의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그는 미래에 로봇이 쾌고 감수성을 지니게 되면 ‘로봇을 위한 복지’도 필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장 교수가 최근 출간한 ‘공감의 반경’(바다출판사)은 제목에서부터 싱어의 영향을 드러낸다. ‘사회생물학과 윤리’가 개념 설명과 철학적 논증에 치중했다면, ‘공감의 반경’은 싱어의 이론을 토대로 현대사회의 숱한 갈등을 해결할 방안을 모색한다. 장 교수는 “중요한 건 공감의 ‘깊이’가 아닌 ‘반경’”이라며 선택적 과잉 공감을 경계해야 폭력과 혐오의 시대를 끝낼 수 있다고 말한다.

―선택적 과잉 공감이란.

“현대인들은 이념과 이익을 공유하는 ‘내(內)집단’에만 뜨겁게 공감한다. 윌슨과 싱어가 연구한 동물들처럼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공감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다정해서 살아남은 인류가 폭력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이유는 이처럼 확장성이 없는 ‘정서적 공감’ 탓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끼리끼리 모이는 ‘디지털 부족화’는 정서적 공감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정서가 아닌 이성에 바탕한 공감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현행 정규교육은 수리 능력과 외국어 능력 향상에 집중할 뿐 타인과 함께 살기 위한 공감 능력은 길러내지 못한다. 분노나 질투 같은 정서는 유전자에 깊숙이 장착된 거라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와 이익을 공유하지 않는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은 본능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생각의 힘으로 ‘깨닫는’ 것이기에 교육을 통해 키울 수 있다.”

장 교수는 지난 9월 부임한 가천대 창업대학에서 ‘인간 본성의 과학적 이해’와 ‘스타트업 창업 프로젝트’라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0년부터는 교육 플랫폼 스타트업 ‘트랜스버스’ 대표로도 활동 중이다. ‘서울대 교수’ 타이틀이 아깝지 않았냐고 묻자 “진화심리학자로서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훌륭한 사업가를 육성할 기회라 여겨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일반적인 창업스쿨은 비즈니스 모델 설정, 해외 진출을 위한 마케팅 기법 같은 실무적인 내용만 가르친다. 하지만 창업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이 마주하는 ‘고통의 지점’을 포착하는 데서 출발한다. 인간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타자의 공감을 유도하는’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진화심리학 이론과 창업 실무를 연계해 10년 안에 가천대 창업대학에서 ‘유니콘 기업’을 탄생시키는 게 목표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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