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미들, RM 좇아 우리 유물 복원에 기부… 문화 파워란 이런 것”[M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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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1-13 09:05
업데이트 2023-01-1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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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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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달 3일 서울 마포구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만난 김정희 이사장. 취임 100일을 맞아 문화일보와 인터뷰했다. 김 이사장은 “RM 기부를 계기로 문화재를 가꾸는 성숙한 문화를 국내외에 널리 알릴 수 있어 기쁘고 고무적이었다”고 전했다. 김호웅 기자



■ M 인터뷰 -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미국 LACMA 소장 조선시대 활옷
RM 기부금으로 복원하고 전시
BTS 팬들 동참 문의도 쏟아져

재단설립 10년동안 933점 환수
25명 직원이 현지조사·구매업무
예산 부족해 발만 동동 굴리기도

취임100일, 재단홍보 더 힘쓸것
국외문화재 역사 테마연구 역점
해외 디지털 실감영상 전시 추진


“방탄소년단(BTS)의 RM이 기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 아미(BTS 팬덤)로부터 문의를 엄청 받았어요. 자신들도 동참하고 싶다고요. 놀랍지 않나요? K-팝 사랑이 한국 문화재에까지 이어지고….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수도 적고, 압도적인 규모의 유물도 별로 없다고들 하지만, 우리 문화 자체의 힘으로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고 믿어요. 힘과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지난해 10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새로운 수장이 된 김정희(65) 이사장의 말이다. 김 이사장 취임을 얼마 앞두고, BTS 리더 RM은 문화재 복원과 활용에 써달라며 재단에 1억 원을 쾌척했고, 재작년에도 1억 원을 기부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RM 덕에 해외 팬들도 관심을 보였다. 지난 11월 한 미국 아미 모임이 530여만 원을 보내오기도 했다. 신선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자, 선물과도 같은 일화였다. 김 이사장은 “문화재 환수와 보존, 활용에는 뜻을 함께하는 민간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RM 기부를 계기로 문화재를 가꾸는 성숙한 문화를 국내외에 널리 알릴 수 있어 기쁘고 고무적이었다”고 술회했다.

취임 100일을 맞이한 김 이사장을 지난 3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사장이 된 후 첫 언론 인터뷰다. 지난 100일에 대한 소회를 묻자 김 이사장은 “취임 일주일 만에 국정감사를 하게 돼 다행이었다”며 웃었다. “공부할 시간도 쉴 틈도 없이 재단에 오게 됐는데, 벼락치기 할 기회가 생겼던 거죠. 짧은 시간에도 재단 업무를 꽤 많이 파악할 수 있었어요.”

김 이사장은 “큰 준비 과정 없이 이사장이 됐다”며 겸손해했으나, 재단을 이끌고 나갈 의지와 방향성은 그가 지나온 경력만큼이나 탄탄하고 깊다. 김 이사장은 국내 손꼽히는 불교미술 권위자로, 지난해 30여 년 몸담았던 원광대를 정년퇴직했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과 한국미술사학회 회장 등을 지내면서 재단과는 이미 오래 연을 쌓았다. 해외 박물관 소장 한국 문화재 연구 조사에 수차례 참여했고, 특정 유물 환수 적정성 평가나 경매 참여 시 매입가 산정 등에서 전문성을 발휘했다.

김 이사장은 ‘우리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환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문화재와 문화적 자산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시대,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경향이기도 하다. 연구자로서 걸어온 길 속에서, 그는 현지 활용이 때론 더 큰 파급력을 지닌다는 것을 종종 목격하고, 몸소 체험했다. 그는 2008년 참여했던 메트로폴리탄 연구 프로그램 때를 회상했다. “1년 정도 미국에서 지내게 돼 한국실을 많이 찾아다녔죠.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한국은 유물 수도 적고 한눈에 관람객들을 사로잡을 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게 무척 속상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우린 문화재를 어떤 시선으로 봐야 할까,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이런 과제를 떠안게 됐고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RM 기부로 복원 처리 후 올해 9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시하는 조선시대 활옷.



이런 측면에서 김 이사장은 올해 9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선보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소장 조선시대 활옷 전시를 주목했다. RM의 기부금 2억 원 중 1억 원이 바로 이 활옷 보존·복원에 쓰였다. 활옷은 내년에 LACMA로 돌아가 다시 특별전을 통해 해외 관람객을 만날 예정. 김 이사장은 “한국 문화재에 대한 국내외 관심과 참여라는 큰 선순환이 확산될 것이다”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유물 하나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 모든 과정이 문화적 자산인 거죠. 그게 가져올 효과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재단은 지난해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환수한 문화재는 총 122건 933점(이하 2023년 1월 1일 기준)이고, 이 중 8점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됐거나 심의 중에 있다. 전문가들은 비교적 짧은 기간에 압축적인 성과를 이뤄냈다고 평한다. 김 이사장 역시 취임 후 업무를 살피다 입이 떡 벌어졌다고. “이 많은 일을 고작 25명이 하고 있었어요. 모두가 멀티 플레이어인 거예요. 그런데 재단에 대해 아직 이름도 모르는 분이 많고, 잘못 부르기도 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모르기도 하고… 이사장으로서 올해는 재단 홍보에도 더욱 열심을 내려고 합니다.”

일본, 미국 등을 떠돌다 돌아온 ‘우리 문화재’가 자주 뉴스에 오르며 화제가 되기에, 재단의 주요 업무가 환수로 보이지만, 사실 출발은 현지 유물 실태 조사다. 어느 나라에 어떤 유물이 있는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인데, 이를 바탕으로 환수해야 할 문화재나 보존 복원이 시급한 유물을 가려내고, 나아가 활용까지 이어진다. 이 모든 과정이 재단의 일. 10년간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한국 문화재는 세계 27개국에 22만9655점이 분포해 있으며, 주요 소재지는 일본(41.6%)과 미국(28.4%)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뿐만 아니라 개인 소장 한국 유물을 발견하고, 필요시 구매하는 것도 핵심 업무다. 이는 유통시장 조사를 통해 이뤄진다. 재단은 세계 30개국 700여 개 경매회사 사이트를 수시로 모니터링한다. 일주일에 ‘코리아’로 검색되는 경매 물건만 수백∼수천 점. 이 중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것들을 선별해내는데 현재 단 1명의 직원이 고군분투 중이다. 시차 때문에 해외 사이트 업데이트 시간을 맞추다가 낮과 밤이 바뀔 때도 많다. 열악한 환경에서 검색과 조사 등 노하우가 날로 발전하고 있다는 후문은 그저 웃고만 넘길 수는 없는 이야기다. “구매 타이밍을 놓치면 유물이 해외로 다시 반출되기도 하고, 또 굉장히 많은 한국 유물이 중국이나 일본 유물로 이름이 잘못 붙어있기도 해요.” 김 이사장은 모니터링 업무의 중요성과 함께 인력 보강의 필요성을 강조하더니, 매입 예산도 증액됐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해외 경매에 좋은 유물이 나와도 발만 동동 굴릴 때가 많죠. 한국 화랑에서라도 사주면 국내로 들어오니 안심인데, 자본력에 밀려 중국 등으로 가버리면 속수무책이니까요.”

취임 석 달을 막 넘기고, 새로운 해를 맞이했다. 올해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은 ‘국외문화재 역사 테마 연구’다. 한국 문화재가 국외로 나가게 된 다양한 배경을 살피고, 다각도로 해외 소재 한국 문화재의 지원과 활용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다. 단적인 예가 베를린 아시아미술관이 소장한 ‘지장시왕도’의 정밀분석과 제작 기법 연구에 재단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 국내 연구자들은 이 귀한 고려 불화의 고화질 이미지를 확보하고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이는 이 유물의 현지 활용이나 장기적으로는 국내 환수의 근거 자료가 될 것이다. 불교미술 전문가인 김 이사장은 “개인적으로도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더욱 관심이 간다”며 “협업의 성과가 무척 기대된다”고 전했다. 문화재를 좀 더 친근하게 접하고 알아갈 수 있도록 국민과의 거리도 좁혀볼 생각이다. 교사나 학생들과 할 수 있는 다양한 답사나 연구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다. 그는 대학에서의 경험을 언급했다. 익산 미륵사지 모니터링 과제를 내줬더니, 처음에는 사진 찍고 기록만 하던 학생들이 스스로 주변 청소도 하고, 안내판의 오타를 찾아내고, 문화재청에 직접 건의도 하는 등 태도 변화가 있었다는 것. 디지털 전시실을 구축하고 영상이나 사진 등 어떤 식으로든 환수 유물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공간을 마련해 보고 싶다. 실감영상 활용 해외 전시도 계획 중이다.

“자꾸, 자주 봐야 관심이 가고 애정이 생기게 돼 있거든요. 사람도 그렇고, 문화재도 그렇습니다.”


일본 불법반출 ‘이선제 묘지’· 프랑스 떠돌던 ‘효명세자빈 죽책’… 우리 곁에 돌아와 보물로

■ ‘역사문화 외길’ 김 이사장이 꼽은 문화재 환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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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한국미술사 석·박사를 취득했다. 역사문화학부 교수로 30년을 보낸 후 재단에 왔으니 평생 한길을 걸어온 셈. 그는 2010년 작고한 한국 미술사 거목 진홍섭 박사의 영향이 컸다고 했다. “진 선생님 수업을 들으며 미술사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도상 해석도 재미있고 사상적으로도 잘 맞아 불교 미술을 연구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도 기독교 학교를 나왔는데, 평생 원불교 학교(원광대)에서 가르쳤다”고, “정작 나 자신은 무교에 가깝다”며 웃었다.

현지 연구나 환수 결정 논의 등 부임 전에도 재단과의 협업이 잦았던 김 이사장은 문화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또 미술사 전공 학자로도 재단의 모든 것에 귀를 기울였고, 흥미롭고 의미 있는 환수 소식이 들리면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기억나는 특별한 사례로는 2017년 일본에서 환수해 와 다음 해 보물로 지정된 ‘분청사기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와 2018년 프랑스 경매에서 구입해 현재 보물 지정 심사 중인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을 꼽았다.

‘분청사기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는 1998년 문화재 밀매단에 의해 일본으로 불법반출된 것이다. 재단의 현지 유통조사를 통해 존재가 확인됐고, 문헌자료로 불법 반출품임을 증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인 소장가를 설득했고, 기증방식으로 돌려받을 수 있었다. 묘지(墓誌)가 고인의 행적을 기록한 도판이란 점에서, 후손들이 애타게 찾고 있음을 알고 소장자가 인도적으로 배려한 결정으로 한·일 양국에서 화제가 됐다. 김 이사장은 “개인적인 손해를 감수한 소장자가 ‘양국 국민이 좀 더 가깝게 지내길 바란다’며 기증 소회를 ‘한·일우호’로 밝혀 울림이 더 컸다”고 설명했다.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은 17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약탈당한 것인데, 흥미롭게도 2011년 장기 임대 방식으로 국내 대여된 외규장각도서와 달리 프랑스국립도서관에 반입되지 않고 흘러나와 떠돌다가 경매시장에 나온 것. 이를 재단의 눈썰미 좋은 직원이 발견해 재단이 구매했다. 프랑스 소유인 외규장각도서는 문화재 지정이 불가하지만, 이 유물은 곧 보물 지정을 앞두고 있다. 김 이사장은 “약탈당한 것을 구매해야 하는 현실은 야속하지만, 떠돌았던 덕에 완전한 우리 소유가 됐다는 점에서는 다행이다”라고 했다. 또한 당시 국고 사용에 부담이 있었는데, 10년간 재단에 25억 원을 기부한 라이엇게임즈의 협조로 매입 할 수 있었다는 것도 감사하고 뜻깊은 선례로 남아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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