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박달산 아래 느티나무

  • 문화일보
  • 입력 2023-01-2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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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숙 수필가, 괴산 농부

우리집 입구에 우뚝 선 느티나무
박달산 아래 자리잡게 해준 은인

그늘정자에 모여 수박 쪼개먹고
택배 아저씨도 쉬어가는 ‘핫플’

마을 이야기 꽃 핀 추억 아련히
더 큰 품으로 우리를 지켜보겠지


내가 사는 마을은 박달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작은 산골에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깊지 않은 계곡을 이루고, 그 옆으로 키 작은 집이 한 채씩 늘어서 있다. 한 집에 일곱여덟 자식들을 키워냈으리라고는 아무리 재어봐도 어림없는 규모다. 방 두 칸이 전부고 부엌 달린 마루에 두레상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공간을 활용했으리라. 짐작해 보면, 나이 어린 순으로 부모와 함께 한 방을 사용하고 머리 굵어진 언니 오빠들이 커튼이든 찬장이든 사이에 두고 형편대로 방을 나누어 사용했으리라.

뜰 앞에는 감나무가 한 그루씩 있고 마당 한쪽으로는 대추나무와 밤나무가 서 있는 집도 있다. 추위에 잘 견디고 물을 많이 안 타는 과실나무를 심어 여러 아이들의 간식을 마련했다. 가끔 홀로 계신 아버지 반찬을 나르는 내 또래 아랫집 셋째 따님, 집 앞 느티나무를 보며 “아부지가 저 어렸을 때 심으셨으니 50년이나 되었겠네요. 형제가 많은 집은 한 집에 열 명이나 되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한다.

아침마다 도시락을 대여섯 개씩 쌌다는 어머니들과 자식들 건사하느라 밤낮없이 몸을 썼을 아버지들이 지금껏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 계시는 것은 오랫동안 자신이 살던 땅에 대한 애착과 근면이 몸에 배어서라고 옛날이야기를 하며 지그시 눈을 감는다.

아랫집 여덟 명이나 되는 딸들은 돌아가며 아버지의 반찬을 해서 나른다. 아버지 손잡고 산책도 하고 빨래도 해드리고 이불도 햇살에 널어드리고, 어머니가 안 계신 집안 살림을 잡도리하고 도시로 돌아간다. 그 모습이 참 평화롭다. 아버지는 그사이 마당에서 키우는 부추를 베고, 상춧잎을 따고, 곰취는 먹기 좋은 크기로 끊어서 가지런히 개켜 놓는다. 아이들도 다 키워서 홀가분해진 따님이 이제는 고향에 계신 연로하신 부모님을 돌보러 한 달에 한 번 옛날 집으로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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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대문 대신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는 우리가 박달산 아래 자리 잡게 해 준 은인이기도 하다. 처음 집 지을 땅을 보러 왔을 때, 점터골 가운데 있어 햇살이 넘쳐흐르고 대체로 반듯하게 네모난 땅이었다. 무엇보다, 박달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먹는다 하니 더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느티나무에 홀딱 반해서 그날로 계약하곤 집짓기 고민을 시작했다.

남편은 건축에 몇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볼썽사납게 언덕 위의 하얀 집처럼 튀는 집이 아닐 것, 산세와 잘 어우러지는 나무와 흙으로만 지을 것, 너른 잔디밭이 아니고 주차하기 쉽게 자갈로 마당을 채울 것! 그래서 마루 앞으로 허드렛일하고 그네 놓을 만큼만 잔디를 심었다.

자연주의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었다. 차량만 드나드는 마당이 아니었고 트랙터가 한 번씩 지나가면 밭에 있던 풀씨들을 달고 나와 잔디밭은 몇 년 만에 풀밭으로 변했다. 자갈은 순식간에 마당 땅바닥에 눌러 박혀서 그 후에도 세 차나 더 부었는데도 장마 때는 여전히 진흙밭이다. 이젠 정말 블록이나 돌을 고민하고 있다. 밭에도 지천인 풀도 못 이기는데 마당 풀은 뽑을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아침에 나와앉아 커피 한잔하면서 아끼는 꽃들을 헤치고 있는 놈들만 뽑아주는 게 정원 관리의 전부다.

타샤의 정원을 꿈꾸며 마련했던 작은 정원도 갈수록 산이다. 마당에서 풀과 씨름하는 나를 보신 동네 형님 넉살, “겨울 되면 풀 다 죽어”는 박달마을의 명언이 되었다.

봄에는 다 이쁘다. 그 찬란했던 잉크 빛 붓꽃 무리도, 지금의 나보다 더 정열적인 명자꽃도, 울타리가 되어 버린 황매화도 모두 꽃을 떨구었지만, 벌써 물을 흠뻑 길어 올려서 진한 초록빛이다. 올해는 눈이 잦아서인지 하얀 눈 속 황매화 줄기가 더욱 싱그럽다. 동네 어르신에게 얻어다 심은 비비추는 멈추지 않는 영토 확장으로 정원의 절반을 차지했다. 잎이 크고 뿌리로 번식하는 비비추 옆으로는 그 어떤 풀도 파고들 수가 없다. 세력이 커질수록 풀이 얼씬도 못 하니 정원의 효자 중의 효자다.

박달마을에는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여 산다. 봄이면 꽃모종을 나누는 아름다운 인사가 마을 연례행사가 되었다. 씨가 저절로 떨어져서 터 잡은 봉숭아·채송화·맨드라미 꽃은 물론, 겨우내 방 안에서 삽목한 백매화를 집 울타리로 만들어주신 교장선생님 할아버지 덕분에 매화 피는 울타리가 우리 집 자랑이다. 달빛에 더 매혹적인 매화 덕분에 봄밤 산책을 청하는 남편과 손잡고 달빛 소나타를 즐긴다.

그뿐인가. 여름이면 옹기종기 모여서 수박을 쪼개 먹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먹거리를 가지고 나와 언니 형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지나가는 택배 아저씨도 쉬어가는 느티나무 그늘 정자가 우리 마을 핫플레이스다. 아랫마을 소식부터 괴산 소식도, 어르신 자녀들 소식도 정자에서 피어나고 전해진다. 한동네 아이들이 이 느티나무 삼거리에 모여서 떠들썩하게 학교에 가곤 했다는 아랫집 따님의 추억 소환으로 느티나무는 더 멋있고 더 든든하다.

우리가 아랫집 어르신 나이가 되면 우리 마을은 또 새로운 모습의 부모 부양 형태가 나타날 테지. 더 우람해진 느티나무는 더 큰 품으로 우리를 지켜보겠지. 그때도 마을의 큰 어른처럼, 지나온 박달마을의 역사를 품고 있을 멋진 느티나무를 나는 오늘도 추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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