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의 좌절과 두려움… 도망치지 말고 나아가길[북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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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2-03 09:01
업데이트 2023-02-0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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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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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팀장의 북레터

얼마 전 회사에서 올해 신춘문예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조경란 작가가 당선자들의 눈빛에서 흥분과 불안이 교차하는 감정을 읽었는지 이런 당부를 건네더군요. “들뜬 시간이 지나면 외로움이 찾아올지 모릅니다. 부지런히 읽고 쓰며 외롭고 힘든 문학의 길을 지치지 말고 걸어가세요.”

첫 단편집을 낸 뒤 찾아온 마음의 기복을 관찰한 소설가 김남숙의 에세이 ‘가만한 지옥에서 산다는 것’(민음사)을 읽다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글쓰기가 어려워 도망치고 싶었던 시절에 관한 책은 자학의 ‘끝판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문장들로 가득합니다. 등단하던 순간의 자신만만한 포부는 온데간데없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내지 못하는 ‘멍청함’에 지옥 같은 괴로움이 쌓여 갔다고 적습니다. 2015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당선된 이후 2020년 소설집 ‘아이젠’을 내놓은 작가는 무기력과 비관에 시달리는 작품 속 인물을 닮아버린 듯한 기분에 휩싸입니다.

어쩌다 몇 줄을 끼적인 날조차 쓰고 보니 누구의 공감도 얻지 못할 이야기 같아 쓰레기통에 처박은 일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소설이란 스스로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 사람인지 확인시켜주는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에 씁쓸해졌습니다. 노력하고 쥐어 짜내도 넘지 못하는 재능이 있음을 절감한 작가는 급기야 “실제 삶 앞에서 소설은 먼지와 같은 존재”라며 자조합니다.

지옥 속에서 읽은 보후밀 흐라발의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뜻하지 않은 용기를 줬습니다. 이 작품은 35년 동안 묵묵히 폐지를 압축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작가는 이 남자를 생각하며 “35년 동안 소설을 써왔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올까”라고 자문합니다. 당장 모두가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쓰지 못해도 꾸준히 한 길을 걸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깨달음이 온 덕분일까요. 작가는 “시간이 흐른 지금 소설을 전보다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는, “이다지도 별로인 내가 그래도 나를 그대로 바라볼 수 있었던 이유가 소설이었다”는 희미한 긍정의 문장을 남깁니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 저마다 아픈 구석을 들여다보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말입니다.

작가들만 재능에 대한 의심으로 괴로워하는 건 아니겠지요. 반복되는 훈련에도 늘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은 두려움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감정이니까요. 멈추지 않고 쓰라는 조경란의 당부를, 어둠의 터널에서 마침내 빛을 발견한 김남숙을 기억하며 힘을 냈으면 합니다. 가만한 지옥을 견디면 또 가만한 천국의 나날이 찾아오겠지요.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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