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요리사의 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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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2-0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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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이들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가장 일반적인 이름은 요리를 하는 사람을 뜻하는 ‘요리사’일 것이다. 그리고 이 요리사 중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주방장’도 흔히 쓰이던 말이었다. 요리를 주제로 한 만화가 인기를 끌고 그 주인공이 궁궐 주방에서 ‘숙수’로 불렸던 까닭에 전통 요리를 하는 이들은 숙수로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셰프’가 모든 요리사 위에 군림하기 시작했다.

셰프는 프랑스어 ‘chef’에서 유래한 것으로 수석 요리사 정도의 뜻이니 주방장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이탈리아 요리인 파스타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 속의 까칠한 주방장이 인기를 끌면서 셰프가 우리말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쓰이기 시작한 지는 꽤 되었으나 이를 외래어로 수용하고 이에 대한 정확한 표기가 정해지지 않았으니 아직은 외국어인 셈이다. 그 사이 드라마에서는 이마저도 줄여 ‘?’으로 부르는 것이 흔한 일이 되기도 했다.

셰프가 프랑스어에서 유래하다 보니 서양 요리를 파는 고급 레스토랑의 주방을 책임지는 이들은 셰프라고 불러야 할 것처럼 되었다. 그리고 주방장은 ‘중국집 주방장’이라는 구(句)가 가장 자연스러울 정도로 지위가 격하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여러 요리 프로그램에서 한식, 중식, 일식 주방장을 출연시켜 셰프라고 부르면서 결국 셰프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최고의 요리사를 부르는 명칭이 되었다.

외국어나 외래어가 높은 대접을 받는 것은 오래된 현상이니 씁쓸하기는 해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듯하다. 그러나 최고의 요리사 자리를 셰프에게 물려줄 이유는 없다. 가끔 비싼 음식점에 가서 셰프의 음식을 즐길 수는 있겠지만, 최고의 요리사는 역시 매일 식구들이 먹는 밥을 만드는 이일 것이다. ‘오늘은 내가 우리 집 요리사’라고 팔을 걷어붙이는 이들 누구나.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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